천재와 바보 그 경계에 선 사람들
천재와 바보 그 경계에 선 사람들
  • 정혜원 기자
  • 승인 2013.03.30
  • 호수 138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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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속에 잠재된 특별한 능력을 꺼내라

1989년 개봉한 영화 「레인 맨」에는 특별한 형제 레이먼드와 찰리가 등장한다. 동생 찰리는 자폐증을 앓고 있는 형에게 아버지가 엄청난 재산을 물려주고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형 레이먼드를 찾은 찰리는 형의 유산을 노리고 형의 보호자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찰리는 형이 숫자를 모조리 외울 수 있는 비상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찰리는 형의 능력을 이용해 도박장에서 큰 돈을 벌게 되고 두 형제의 관계는 회복된다. 여기에 등장하는 형 레이먼드는 ‘이디엇 서번트(Idiot Savant)’이다.

백치 천재, 이디엇 서번트
‘이디엇 서번트(Idiot Savant)’는 아이큐가 심각하게 낮거나 정신지체, 자폐증 같은 정신장애를 갖고 있으면서도 음악이나 미술, 계산 같은 특정 분야에서는 극도의 천재성을 보이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이디엇 서번트는 100년 전 영국의 의학자인 랭든 다운 박사가 처음 사용했다. 그 당시 ‘이디엇(Idiot)’이라는 단어는 지금처럼 ‘바보, 백치’를 뜻하는 부정적인 표현이 아니라 ‘IQ25 이하 정도의 지능 수준’을 의미하는 의학적이고 심리학적인 용어였다. 서번트(Savant)는 프랑스어의 ‘알기 위해’ 또는 ‘배우는 사람’이란 말에서 유래돼 한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석학이나 천재를 의미한다.  랭든 다운 박사는 위 두 단어를 조합해 ‘이디엇 서번트’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심각한 정신 지체를 가졌지만 학습능력이 뛰어나고 암기력이 탁월한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후 이디엇 서번트는 ‘백치천재’를 의미하는 용어로 일반화됐다.

책 「뇌의 기막힌 발견: 머릿속으로 뛰어든 매혹적인 심리 미스테리」는 서번트 신드롬을 “천재와 바보가 한 사람 안에 있는 아주 아이러니한 상태”라고 말한다. 서번트는 극단적인 천재이기 때문에 그들은 한 분야에서는 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나지만 이를 제외한 다른 분야에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형편없다.

▲ 영화 「레인 맨」의 한 장면이다.
영화 「레인 맨」의 자문위원이었던 대롤드 트레펄트 박사는 그의 저서 「너무나 특별한 사람들: 이디엇 서번트를 이해하기」에서 “정신 건강시설에 거주하는 9만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 54명의 서번트가 확인됐고 이는 2천명당 1명꼴”이라고 했다.  하지만 트레펠트 박사는 “이 신비로운 상태를 충분히 설명해주는 이론은 아직까지 없다”며 “서번트 사례들이 다양한 만큼 이론 역시 다양할 수밖에 없다”고 이유를 덧붙였다.


다양한 서번트, 다양한 이유
서번트 현상을 설명하는 가장 유력한 이론은 ‘△감각박탈과 사회적 철회 △보상 기술의 발달 △시각적 상상능력 △유전적 능력 △좌우 뇌 기능의 불균형 △추상적인 사고능력의 손상’ 이렇게 6가지로 설명된다.

‘감각박탈과 사회적 철회’는 시각이나 청각등의 감각 능력이 상실된 서번트들이 부모로부터 버려지는 등 사회적으로 배제되는 경험을 했기 때문에 비범한 능력을 갖게 됐다는 이론이다. 하지만 트레펠트 박사는 “많은 서번트들이 사회적으로 정상적인 양육을 받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며 “‘감각박탈과 사회적 철회’는 서번트 신드롬의 증상이라기보다는 결과라고 보는 관점이 우세하다”고 말했다. ‘보상 기술의 발달’은 서번트들이 장애에 적응하기 위해 엄청난 기억력과 같은 보상 기술을 발달시켰다는 것이다. 하지만 트레펠트 박사는 “근거가 없기 때문에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한다”라고 단정지었다.

‘시각적 상상능력’이란 빠르게 내용을 훑은 다음 방대한 양의 정보를 즉시 저장하고 회상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그러나 모든 서번트들이 시각적 상상능력을 가지지 않고 시각 장애를 가진 서번트들은 어떤 것도 볼 수 없기 때문에 이 이론에는 한계가 있다.

‘유전적 능력’은 서번트들이 부모로부터 비범한 능력을 유전적으로 물려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서번트들은 장애가 없는 부모 밑에서 태어난다. 또 서번트들도 장애가 없는 아이를 낳을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서번트의 경우에 적용할 수 없다. ‘좌우 뇌 기능의 불균형’이론은 서번트들이 기질적인 뇌 손상을 입었기 때문에 한 쪽 반구로 기능이 편재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서번트들이 EEG(머릿골 신경 세포의 전기 활동을 그래프로 기록한 그림)와 CAT(방사선이나 초음파를 여러 각도에서 비춰 투영된 인체 내부 영상) 스캔 결과 어떤 뇌 이상은 물론 기질적인 뇌 손상도 없었음이 밝혀졌다.

마지막으로 ‘추상적인 사고능력의 손상’ 이론에 대해 트레펠트 박사는 “이 관점은 서번트의 원인을 설명하기보다는 상태를 그대로 기술 한 것 뿐이다”라고 말했다. 결국 트레펠트 박사는 “서번트의 행동은  존재함에도 이해하지 못하는 영역”이라고 결론 내렸다.

참고 : 도서 「뇌의 기막힌 발견: 머릿속으로 뛰어든
 매혹적인 심리 미스테리」,  「서번트 신드롬 위대한 백치천재들 이야기」
다큐 「KBS 스페셜 최초 보고 서번트 신드롬-
경이로운 천재들」
논문 「자폐음악 서번트의 음악적 특징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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