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언론, 그 위치에 대해
대학언론, 그 위치에 대해
  • 이희진 편집국장
  • 승인 2013.03.23
  • 호수 138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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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서울캠퍼스 방송국 회의실에서 우리학교 대학언론 편집국장의 좌담회 및 인터뷰가 진행됐다. 서로 처음 만나는 자리라 어색한 기운이 맴돌았지만 서로가 겪고 있는 ‘예산문제’, ‘인력난’ 등을 공유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이야기가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그 자리에 있던 본지 기자, 방송국 국장, 교지 편집위원장, 저널 편집국장의 한숨을 이끌어 낸 것은 다름 아닌 대학언론의 위기. 셀 수 없는 기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대학언론에 관심이 없고, 학교 측은 왜 우리학교에 언론이 존재하는지, 예산을 왜 투자해야하는지 등이 담긴 개혁안을 제출하라고 몇몇 국장에게 요구했다. 사정이 이러하자 연세대 대학언론의 예산 70% 삭감이 남 일처럼 들리지 않았다.

대학언론은 존재적 아이러니에 처해있다. 언론이긴 하지만 예산이 학교에 종속돼 있는 부속기관이기도 하다. 때문에 학교 측의 사정 혹은 언론을 압박하려는 요량으로 예산 삭감이라는 카드를 꺼냈을 때, 대학언론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예산 삭감에 대한 회의 자체에 학생 기자들이 참여할 수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결국 예산 삭감은 발행부수 감축으로 이어지고 자연스럽게 구독률 저하로 연결된다.

대학언론의 위기에 ‘예산’과 양대 산맥을 이루는 것이 학생들의 ‘무관심’이다. 물론, 언론 자체에 대한 회의적이고 냉소적인 시각은 비단 대학에 국한되지 않는다. 문제는 기성언론에 대한 시각이 그대로 대학언론에 적용된다는 것이다. 또 취업이라는 바늘구멍을 뚫고 들어가기에 우리네 대학생들은 너무 바쁘다. 학생들에게 대학언론의 위기는 ‘남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대학언론의 위기가 대학언론의 연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지난 연세춘추 사태에서도 언급했듯 대학언론이 있음으로써 학교 또한 발전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학생들 또한 언론이 제기한 문제가 시정되고, 이로 인해 그들이 받는 혜택이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 대학언론의 존재 자체가 그 학교의 민주주의, 학교 내에서의 소통, 학교 측의 열린 자세, 학생들의 애교심을 판가름할 수 있는 척도라는 뜻이다.

인터뷰에서 질문으로 ‘대학언론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는가’가 주어졌다. 기자는 이전 칼럼에서도 밝혔듯 ‘공유’되는 신문을 위해 가판대 위치 변경, 학내 사안에 집중, 학교 3주체(교직원, 학교, 학생)의 소통을 주도하는 등 여러 방안을 제시했다. 방송국 국장 또한 자구책을 마련했다고 했다. ‘학내’ 방송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춰 학생들의 손 글씨 사연을 받거나 우체통을 설치하는 등 삭막한 현실에 역으로 ‘감성’이란 코드에 초점을 맞춰 다가갈 것이라고 했다.

대학언론은 ‘노력’하고 있다.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기 위해 예전의 영광을 찾기 위해서 말이다. 대학언론의 위기가 예산, 취업, 회의적 시선 등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에서 비롯됐기에 문제에 얽힌 사람들 또한 구경꾼이 아닌 ‘문제의 핵심’이다. 문제의 핵심은 ‘해결의 열쇠’와 같은 말이다. 대학언론이 위기를 벗어나 대학과 학생과 공존하기 위해선 언론의 자구적인 노력 뿐 아니라 문제에 얽힌 당사자들 또한 함께 노력해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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