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물질, 지구의 씨앗이 되다
유전물질, 지구의 씨앗이 되다
  • 정혜원 기자
  • 승인 2013.03.23
  • 호수 138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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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부터 신약품까지, 무궁무진한 종자 이야기

'유전물질’이란 이름의 모태(母胎)
북극 노르웨이령 스발바르제도(북위 78도)에는 세상에서 가장 견고한 금고가 있다. 이 금고는 스발바르의 4개 섬 중 하나인 ‘스피츠버겐’ 섬에 위치해 있으며 길이 120m의 인공동굴 안에 있다. 6.5 이하의 지진과 핵미사일 공격에도 끄떡없고, 침입과 도난에 대비한 다중의 보안시스템도 갖춘 이 금고의 이름은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소’이다.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소는 세계작물다양성재단이 천재지변 또는 전쟁, 핵폭발과 같은 지구 대재앙에 대비해 인류에게 필요한 식물자원을 보존하고자 설립했다.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소에 보관된 것은 단순한 ‘종자’가 아니다. 이 종자는 인류가 살아가는 에너지의 원천이자 발전 동력인 ‘유전자원’이다. 유전자원은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할 수 있으며 그 모습에 따라 무궁한 가치를 가진다.

유전물질이란 자신의 고유 특성을 다음 세대에 전달해 줄 수 있는 기능을 가진 동물·미생물·식물·DNA 등을 가리킨다. 「외교통상용어 사전」에서는 유전자원을 ‘유전적 변이가 풍부한 생물집단의 총칭으로 실질적 또는 잠재적 가치를 지닌 물질’로 정의하고 있다. 즉 유전물질은 유전자원들 중 실질적 또는 잠재적 가치를 가진 것들을 말한다. 실질적 가치로서의 유전자원은 벼, 소와 같이 현재 재배나 채취를 통해 삶에 직·간접적으로 이용되는 것이다. 잠재적 가치로서의 유전자원은 미래에 이용될 가능성이 있지만, 현재 이용되지 않는 야생 동식물 등이 가치를 인정받기 전의 상태인 것을 의미한다. 농촌진흥청은 유전자원의 가치를 크게 5가지(경제, 생태, 문화, 사회, 정치적 측면)로 나눈다.

돈이 열리는 씨앗, 문화가 된 씨앗
먼저 ‘경제적 측면’은 종자, 천연물 신약, 산업 소재, 바이오 에너지 등 미래 성장 동력으로서의 가치를 강조한다. 세계 종자시장 규모는 현재 약 700억 달러 내외이며 연평균 5.2%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종자는 세계적으로 거대한 로열티 시장을 형성하면서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해냈다. 이와 관련해 마경호<농업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팀장은 “국제식물 신품종보호연맹(UPOV)은 상업용 품종의 배타적 권리를 인정하는 국제협약”이라며 “이 협약을 통해 연간 약 1만여 품종이 새롭게 배타적 권리를 획득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UPOV의 50번째 회원국인 우리는 현재 약 160억 원에 달하는 종자 사용료를 타 회원국에 내고 있는 상황”임을 지적했다.

‘생태적 측면’에서 유전자원은 수억 년간 지구 생태계의 평형을 유지하는 데 이바지해왔다. 하지만 기후 변화 등 여러 요인과 맞물려 서식지가 파괴돼 많은 지구 생물 종들이 사라졌다. 이때 농업유전자원은 멸종 위기에 처한 생물 종을 지키기 위한 방안으로 떠올랐다. 또 다양한 생물 종으로 구성된 자연환경은 음식, 생활습관, 종교 등에 영향을 미치며 민족성을 형성했다는 점에서 ‘문화적 가치’를 가진다. 농업진흥청이 발간한 단행본 「新 유전자원 가치論」은 “식량이 되는 유전자원의 분포는 유목민족과 농경민족을 결정짓는 원인”이며 “특정 지역 주민의 전통지식이 유전자원으로 여겨지면서 지역 내 전통지식도 자원화 되는 추세”라고 기술했다.

‘사회적 측면’에서는 유전자원으로 인해 인류의 터전이 달라진다고 본다. 유전자원의 종류와 그 생태에 따라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 예로 세계 4대 문명 발상지는 각각 이집트의 밀, 메소포타미아의 보리, 인도의 쌀, 중국의 조 등의 식량이 농경 생활의 산파 역할을 했다. 또 다양한 생물자원은 미래사회 발전을 위한 문화콘텐츠의 원천이 됐다. 「新 유전자원 가치論」은 “그린 투어리즘, 도시 농업, 체험 학습 등은 유전자원의 정서·문화 기능이 사회적인 요구와 만난 대표적인 사례”로 소개한다. 

유전자원, 융합을 통해 문화콘텐츠로
유전자원의 사회경제적 가치의 중요도가 높아지면서 선진국과 저개발국 간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유전자원의 ‘정치적 기능’이 두드러지고 있다. 「新 유전자원 가치論」은 “생물다양성협약과 이에 따른 본 지침에 따르면 유전자원을 인류 공통의 자산으로 인정했다”며 “이로 인해 선진국과 저개발국 간의 협력 사업에서 저개발국이 유전자원에 대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규정했다”고 기술했다. 위와 같은 협약을 통해 유전자원을 수집·이용하는 국가가 발생하는 이익을 유전자원을 제공한 국가와 공정하게 배분해 저개발국의 발전을 돕는다.

마 팀장은 “유전자원은 보통 경제적 가치를 중심으로 평가되는 경향이 있다”며 “유전자원의 가치는 사회, 문화, 생태, 정치적 관점까지 인식을 확대해야 하며 이를 위한 국가 유전자원 관리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품종개발 등 농업적 이용에서 천연물신약, 바이오에너지, 산업 신소재 등의 분야에 대한 잠재가치 발굴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사회·문화적 가치를 인식해 한식세계화 사업과 같이 유전자원과 전통지식과의 연계를 도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88 서울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는 전통문화와 유전자원을 결합한 문화콘텐츠의 예시라고 할 수 있다. 국제사회의 유전자원 관련 논의에 적극 참여하여 국제위상을 높이는 노력은 유전자원의 정치적 가치를 높이는 역할을 할 것이다.

참고 : 농업진흥청 「新 유전자원 가치論」,
「미래 녹색성장의 희망 농업유전자원센터」
도움 : 마경호<농업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팀장, 이가진<농촌진흥청 농업유전자원센터 홍보팀>
이미지 출처 :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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