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자!”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자!”
  • 김은영 기자
  • 승인 2013.03.16
  • 호수 138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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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준 ‘잉글리시비주얼’학원 선생님

‘창의적인 어른은 살아남은 어린이다’란 말이 있다. 아마 박상준 선생님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박상준 선생님은 영어를 쉽게 익힐 수 있는 효율적인 체계를 만드는 연구자이자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자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긴 시간 동안 녹음하는 휴대폰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시선에서 그만의 인간성이 느껴졌다.

문학소년, 영어를 가르치다
어린 시절의 그를 살펴보면 지금 하고 있는 일과 전혀 다른 성향을 가진 학생이었다. 그는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깔끔한 수학 공식보다 섬세한 감수성이 묻어나는 시 읽기나 글쓰기를 좋아했다. 주위에서 글을 잘 쓴다는 말을 들으며 조금씩 문학인의 꿈을 키우던 그는 대학에 진학할 때도 ‘영문학과’를 선택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당연히 문학도가 될거라고 생각했던 그의 미래는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뒤바뀌었다.

“한번은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할 학생을 추천해달라고 학과 사무실에 전화가 왔는데 우연히 그 일을 내가 하게 된 거야. 희한한 일이지만 그게 인연이 돼서 지금 이 길을 걷게 된 거지. 그전엔 내가 문학을 연구하는 교수가 될 거로 생각했는데 말이지. 돌이켜 보면 그때 나를 추천해준 것 때문에 인생이 이렇게 꼬였다고 해야 하나, 하하하 정말 특이한 계기로 시작했지.”

그는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영어 원서를 읽어주고 영어 문장을 만드는 원리를 가르치는 일에 묘한 매력을 느꼈다. 똑같은 영어를 가르치는 일이지만 자신이 어떻게 설명을 하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머릿속에 기억되는 영어의 모습은 달랐다. 그는 어떤 방식으로 가르쳐야 좀 더 깔끔하고 효율적인 영어 체계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며 영어 문장 구조를 실험하는 일에 푹 빠졌다.

“수업할 때마다 영어 문장을 다양한 방법으로 재가공해 보는 언어 실험을 했어. 처음엔 의욕에 불타 약 백만 원이 넘는 제본비까지 들여가면서 책을 만들었어. 돈을 버는 게 목적이 아니라 내 실험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알고 싶었던 거야. 학교도 휴학하고 한 이, 삼년동안 이 일에 매진하기로 했지.”

둘 중의 하나를 택한다면
만약 그가 문학을 공부하는 길을 선택했다면 인생을 좀 더 편하게 살았을 것이다. 그가 학교에 다니던 당시 영문학에 매진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주위에서 교수의 길을 곧잘 가라고 했고 그 역시 교수가 될 생각이었다. 그가 문학을 계속 전공해 교수가 됐다면 아무런 걱정 없이 좋아하는 연구를 계속하면서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영어교육과 문학, 둘 사이에서 고민할 때 그가 따랐던 가치는 ‘사회에 도움이 되는가’였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경험을 한 후 학교에 다시 돌아왔는데 일 년쯤 다니다 다시 그만뒀어. 문학이 예전만큼 재밌지 않은 거야. 문학을 하면 난 즐겁긴 하지만 그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싶었지. 문학을 공부하며 학구적인 사람으로 남기보다 좀 더 실용적인 연구를 통해 사람들에게 무언가 기여하는 게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

새로운 영어 법칙에 관한 논문은 외국에서도 무궁무진하게 쏟아져 나왔지만 이는 한국의 현실과 맞지 않았다. 또 한국인의 사정을 안다 해도 그것을 개선할 능력을 가진 사람 역시 많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바로 그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보지 못한 걸 내가 이야기해주고 싶은 거야. 그 길이 내가 무언가 학문적으로 이바지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어. 내가 그런 체계를 만들 때, 기존 학자들이 연구해온 ‘현대 언어학’에 정말 도움을 많이 받았어. 동시에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은 지식을 만들기 위해 현장감을 잃지 않으려고 계속 아이들을 가르치며 연구했지. 재료는 있지만, 그것을 가공해서 요리를 만드는 건 실전 감각이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선 현장에 있는 게 필요하거든.”

그는 본격적으로 직접 아이들을 가르치는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고 또 그 옆에 영어를 연구하는 연구실을 함께 놓아 자신의 실험을 시작했다. 연구하는 과정 중에서 얻은 지식의 기쁨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에게 가장 힘이 된 것은 어린 학생들의 지지였다. 학생들이 전에는 보이지 않던 원리를 하나씩 깨닫는 모습을 보며, 그는 크나큰 행복을 느꼈다.

“영어를 싫어했던 아이들의 반응이 달라지는 게 너무 신기한 거야. 나는 영어가 우연히 만들어진 게 아니라 어떤 규칙적인 원리에 의해 생겨났고 이 방법을 배운다면  문장을 쉽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려 했지. 그리고 그것을 배운 아이들이 더는 영어에 스트레스 받지 않고 배움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을 볼 때 큰 희열을 느꼈어. 그런 것이 진짜 나를 이끌어가는 동력이 되는 것 같아.”

영어 학원을 운영하면서 평소에 관심이 없던 경영을 배워야 할 때도 있었다. 그런 상황이 올 때, 그는 ‘상상력’을 발휘해 문제를 해결했다. 자신이 하고 싶지 않았던 일이라도 상상력이 있으면 배워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긴다는 그는 학원 운영을 위해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경영학’도 공부하게 됐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이 많잖아. 그땐 상상력을 발휘해서 이것에서 내가 과연 무엇을 끌어낼 수 있느냐고 생각해. 그럼 지루해 보이는 일도 즐겁게 할 수 있어. 이렇게 생각하니까 옛날엔 좋아하는 일만 했는데, 이젠 즐겁지 않아 보이는 일도 하게 된 거 같아. 예를 들어 경영엔 칼 같은 면이 있어야 하는데 내가 마음이 약해서 잘하진 못해. 그래서 예전엔 그런 일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 그런데 경영학은 효율성을 중시하는 학문이란 걸 인지하고 배우겠다는 맘을 가지고 관련 책을 읽는 등 관심을 뒀더니 그것을 배우는 게 재밌는 거야. 모든 학문의 역사에는 사람들이 ‘어떤 시도’를 통해 기존의 틀을 깬 사례가 있거든. 그런 공통점을 발견해나가면서 공부하다 보면 어떤 학문이라도 재미를 느낄 수 있어.”

누가 뭐래도 너의 길을 가라
박상준 선생님은 그동안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좇아간 사람이다. 설령 그가 생각해오던 길 외에 다른 길이 나타나더라도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즐겼다. 그는 누구나 어떤 분야에 뛰어들더라도 요즘 사회는 경쟁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택해야 그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이 될 수 있고 긴 인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진짜 좋아하는 걸 해야지 그렇지 않은 일을 간다면 인생에서 겪을 수많은 경쟁에서 밀려. 어느 분야든지 그것에 완전히 미친 애가 있거든. 피겨스케이트에 김연아가 나타나는 것과 마찬가지야. 결국, 자신이 진짜 좋아해서 몰입할 수 있는 애가 잘하게 되거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느 분야나 경제적으로 괜찮다 싶으면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경쟁을 피할 수는 없어. 그러니까 인생을 길게 봐야 해. 내가 진짜 좋아할 수 있는 길인가가 중요해. 그것을 찾기 위해서 젊을 땐 이것저것에 몸을 던져 봐도 좋다고 생각해.”

항상 호기심이 많은 그에겐 아직도 해야 할 일들이 많이 남아 있다. 영어학에 대해 보여주고 싶은 이론이 약 40여 가지라면 아직 4가지 정도밖에 보여주지 못했다고 말하는 그는 이제 시작인데 벌써 나이가 많이 들었다며 조금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다음엔 어떤 게 그려질진 모르겠지만, 영어를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경제적이고, 모두가 이해할만한 합리적인 체계를 보여 주고 싶어. 또 그것을 즐길 수 있는 모델을 만드는 게 목표야. 그리고 이 외에도 다른 도전을 해보고 싶어. 이 분야에서 충분히 했다는 생각이 들면 또 다른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일을 하는 거지. 아직도 궁금한 게 있고 하고 싶은 일이 많은데 다 하기에는 인생이 짧아. 금방 할아버지가 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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