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예산이란 이름의 폭력
연세대, 예산이란 이름의 폭력
  • 이희진 편집국장
  • 승인 2013.03.09
  • 호수 138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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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연세대에서 서울권대학언론연합회(이하 서언회) 회의가 진행됐다. 회의의 가장 큰 안건은 연세대 학보사 연세춘추의 예산삭감이었다. 연세대 측은 신문인쇄비를 제외한 부족분을 기자들의 자구노력으로 채우라고 전달했다. 기자들은 하루아침에 삭감된 약 70%의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할 여력도 없었다. 망연자실(茫然自失). 그들에게 이만큼 와 닿는 단어가 또 있을까.

연세춘추 편집국장을 통해 들어본 현실은 너무나도 절박했다. 전기세, 물세 등 각종 공과금을 비롯한 기자들의 공간마저 그들의 자비로 꾸려진다고 했다. 연세대 동문 끝에 위치한 편집실이 기자들의 위치와 같다는 농담에 쓴웃음이 지어졌다. 예산삭감의 근거가 교육과학기술부의 정책에 있다곤 하지만 이같은 사실을 단순히 ‘통보’식으로 처리한 데엔 문제가 있다. 기자뿐만 아니라 주간 편집인도 예산삭감의 내용을 몰랐다고 하니 연세대 측이 얼마나 일방적으로 일을 처리했는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사정이 이러하니, 가장 먼저 움직였어야 할 학생들은 연세춘추가 이런 어려움에 놓여 있는지조차 모르는 것 같았다.

 특히나 연세대는 학내 사안에 대해 공유하기엔 아주 취약한 구조로 돼 있었다. 학생들이 이용하는 커뮤니티는 활동이 미비하고, 학교 측에서 소통을 위해 제공하는 게시판의 존재는 연세대 기자들조차 잘 모른다고 했다. 따라서 학교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역할은 필수불가결하게 학보사의 몫으로 돌아가고, 학교 측의 미움 또한 학보사의 몫이 됐다.

미운털이 너무 많이 박혀서인지 처음에 학교 측은 학보사와의 대화조차 꺼렸다고 한다. 지난 7일 학교 측과의 대화는 어렵게 성사됐지만, 여전히 자구책으로 예산을 충당하라는 이야기만 반복했다고 한다. 하지만 학교 측의 주장은 기자들이 ‘학생’이란 것을 망각하고 그들에게 ‘영업사원’이 되라고 등 떠미는 것과 같다.

학보사를 포함한 대학언론의 존재는 ‘불가침의 영역’이다. 존재 자체가 그 학교의 상징이며 얼굴과 같다. 대학언론은 학교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 갈 수 있도록 돕는 조력이자 학생들이 느끼는 불편함을 전달하는 비판자의 역할을 한다. 학교 측 또한 연세춘추와 공생의 관계를 맺으며 학교가 발전해 왔다는 점을 부인하진 않을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발달은 ‘학보사’와 함께했다.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수많은 구호가 신문 위에서 널뛰었고 학생들을 광장으로 이끌었다. 80년대를 주름잡던 운동 한가운데 연세춘추가 있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민주주의의 근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언론’을 예산이란 도구로 압박하는 행위는 학교의 역사를 부인하는 것과 같은 아주 근시안적인 안목이다. 학교 측은 장기적인 안목을 위해서라도 학보를 어려운 상황으로 내모는 것은 누워서 침 뱉기와 같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또 연세대 학생들 또한 이 같은 사실이 자신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것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학보가 존재하는 이유는 학생에 있다. 학보는 학생을 위해 일하는 것을 멈추지 않으려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학보사를 위해, 더 나아가 학생 자신의 권리와 학교의 명예를 위해 이제 학생들이 노력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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