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종교의 양 손을 모으고 기도하다
건축과 종교의 양 손을 모으고 기도하다
  • 금혜지 기자
  • 승인 2013.03.09
  • 호수 138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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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근의 ‘경동교회’가 지나온 시간
경동교회는 일반적인 ‘교회’의 이미지인, 높은 첨탑에 십자가가 세워져 있는 건물의 모습과 사뭇 다르다. 양 손을 모으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붉은 벽돌조의 건물은 성곽이나 조각품처럼 보이기도 한다. 교회는 동대문 운동장과 장충동 사이의 번화한 도심에 위치해 있다. 세속에서 성스러운 곳으로 들어갈 때, 마음가짐을 다시 하라는 의도로 건축가는 교회의 입구를 건물 후면에 배치했다. 서현<공대 건축학과> 교수는 그의 저서「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에서 “건축가(김수근)는 거리를 등지게 교회를 들어앉혀 교회로 들어가려면 우둘투둘한 벽돌 계단을 따라 건물을 빙 돌아가게 설계했다”며 “계단을 걷는 동안 마음을 정화시키라는 의미다”라고 서술했다.

▲ 기도하는 손을 연상케 하는 모양의 경동교회 전경
교회는 1981년, 창립 35주년을 맞아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됐다. 카톨릭 신자였던 건축가 김수근은 경동교회 초기 목사였던 강원용과의 친분으로 교회의 설계를 시작하게 됐다. 건물의 외부는 붉은 벽돌이 규격화되지 않은 기하학적 형태로 배치돼있다. 이에 대해 서 교수는 “우선 벽돌을 반으로 거칠게 쪼갠 다음 그 쪼개진 단면이 외부로 노출되게 쌓았다”며 “햇빛이 벽면에 떨어질 때 드러나는 면의 힘은 가히 압도적이다”라고 말했다.

이 곳은 기독교 장로회의 모태 교회로, 한국 교회 진보의 상징으로 불리기도 한다. 경동교회는 일제의 종교 탄압을 피해 간도 용정에서 전도와 교육, 봉사활동을 위해 모였던 ‘선린 형제단’이라는 기독학생조직에서 출발했다. 해방 이후 남한을 찾아 내려온 단원들이 1945년 12월 ‘선린형제단 전도관’이라는 이름으로 첫 예배를 올렸다.

▲ 교회 입구로 돌아서 들어가는 계단
1947년부터는 경동교회에서 보수주의 신학에 맞선 자유주의 신학이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교회의 당회장이자 조선신학교 교수였던 김재준 목사의 주도로 이뤄진 자유주의 신학운동은 끝내 기독교장로회와 예수교장로회의 분리를 가져왔다. 이 사건은 현재까지도 ‘기독교 교단의 분열 시작’이라는 비판과 ‘한국 신학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엇갈리는 평가를 받고 있다.

건축가 김수근은 이런 종교적인 논란을 모두 뒤로 하고 이 공간을 신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만남이 이뤄지는 장이 되기를 바랐다. 그는 자신의 저서 「하늘로 열리다」에서 “교회건축이 가지는 상징성은 그 자체로서 신도, 비신도를 가리지 않는다”며 “그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마음의 근원을 기억하게 해주는 형태 자체에 독자성이 부여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참고: 논문 「경동교회-신학적 개념과 예술의 조화」,「경동교회-통일 준비하는 한국교회 진보의 상징」 도서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서현
이미지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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