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눈의 한국인이 꿈꿨던 이상향
푸른 눈의 한국인이 꿈꿨던 이상향
  • 금혜지 기자
  • 승인 2013.03.02
  • 호수 138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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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의 시작을 도왔던 앨버트 테일러의 ‘딜쿠샤’

딜쿠샤(DILKUSA), 힌두어로 ‘이상향, 행복한 마음, 기쁨’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다. 이름도, 외관도 낯선 이 건물은 서울 종로구 행촌동 어느 골목 안에 숨어있는 근대 문화재다. 딜쿠샤는 1920년대 당시로써 파격적인 건축 양식으로 지어져 지금까지도 눈에 띄는 건물이다. 서현<공대 건축학과> 교수는 붉은색 벽돌이 인상적인 이 건물에 대해 “벽돌을 세워 교차해가며 쌓는 것은 대단히 독특한 사례이기 때문에 구조물의 가치가 높다”며 “내·외부가 많이 훼손돼 있지만, 최근에 연원이 뚜렷하게 밝혀져 역사적 의미도 깊다”고 말했다.

▲ 붉은 벽돌이 인상적인 딜쿠샤의 외관이다.
400살이 넘은 은행나무 뒤에 있는 빨간 벽돌집은 금광 개발업자이자 UPA의 특파원으로 서울에 머물렀던 미국인 ‘앨버트 테일러’의 집이었다. 앨버트 테일러는 1919년 3.1 독립선언과 제암리 민간인 학살사건을 외부에 알려 일제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린 언론인이다. 그의 부인 메리 테일러의 자서전 「호박 목걸이」에 따르면 앨버트는 독립 선언서 사본을 발견한 후 동생에게 선언서를 구두 뒤축에 숨겨 서울을 떠나 도쿄로 가게 했다. 선언서 발행 금지 조처가 내려지기 전에 독립 선언서를 그가 쓴 기사와 함께 미국으로 전송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일련의 사건이 문제가 돼 그는 서대문형무소에서 6개월간 감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그는 국외로 추방되었지만, “내가 사랑하는 땅 한국에 묻어달라”는 유언에 따라 양화진 외인묘지로 다시 돌아오게 됐다. 이후 그의 자택이었던 딜쿠샤는 오랫동안 세상에 잊힌 채 방치되다가 앨버트의 아들 블루스 테일러가 87세의 나이로 서울을 다시 찾게 되면서 베일을 벗었다.

하지만 건물의 역사적 의의가 최근에 밝혀진 탓에 딜쿠샤는 논란의 중심에 놓였다. 그동안 이곳이 문화재인 것을 알지 못했던 17 여명의 주민과 갈등이 생기면서 딜쿠샤의 문화재 등록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이 공간을 찾은 여행객 A씨는 “이상향을 뜻하는 ‘딜쿠샤’의 이름에 걸맞게 건물의 보존과 주민의 거주권이 모두 해결돼 이상적인 공간으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전했다.     

참고: 도서 「세 이방인의 서울 회상」,「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사진출처: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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