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연출론으로 본 영화「괴물」
봉준호 감독의 연출론으로 본 영화「괴물」
  • 이희원 기자, 고석균 수습기자
  • 승인 2013.01.04
  • 호수 137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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푼크툼과 비판 의식, 그리고 소시민의 삶

지난 2006년 7월 개봉 후 무려 1,30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 「괴물」은 우리나라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의 성공 요인으로 전문가들은 블록버스터적인 마케팅과 가족적인 이야기, CG의 화려함 등을 꼽는다.

그런데 여기서 영화가 흥행할 수 있었던 요인은 이뿐만이 아니다. 영화를 만든 봉준호 감독이 추구하는 연출론 또한 이 영화가 흥행할 수 있었던 요소이다. 연출론이란 연극이나 영화에서의 연출에 대한 원칙과 방법 따위를 연구하는 예술 이론을 뜻하는 말이다. 연출론은 감독이 추구하는 방향에 따라 영화의 메시지가 달라지므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영화 「괴물」에서는 어떤 연출론이 사용됐을까?

   
  분향소에서 남주가 사망자를 확인한 후 울고있다.  
   
  ▲ 극중 미군 실험실에서 다량의 포름알데히드를 한강에 흘려보낸다.  
   
  ▲ 강두는 괴물의 습격 이후 어린 세주를 보살핀다.  
푼크툼을 이용하다
‘강두의 가족이 분향소에서 현서를 추모할 때 남주의 속옷이 노출된다. 그러자 강두는 남주의 바지를 올려준다.’

강두는 하나뿐인 딸의 분향소 앞에 서있고 자신의 딸의 명복을 빌어줘야만 하는 상황에서 남주의 바지를 올려주는 행동은 전체적으로 슬픈 분위기에 있어서 조금은 어색할 수 있는 장면이다. 그러나 다소 뜬금없어 보이는 이 장면은 의도된 봉 감독 연출론기법인 ‘품크툼’이 사용된 장면이다. 영화에서 푼크툼은 영화를 보다가 갑자기 바늘처럼 툭 튀어나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기술을 말한다.

김윤지<예술대 연극영화과> 교수는 “사진을 해석하는 방법론인 푼크툼을 영화에 사용했다”고 말했다. 푼크툼이란 롤랑 바르트가 언급한 개념으로 하나의 예술작품을 접했을 때, 모두가 느끼는 것이 아닌 개인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을 뜻한다. 전체적인 슬픈 분위기에서 돌출돼있는 듯한 분향소 장면은 감독의 숨은 연출이다. 이 장면은 여자인 남주의 속옷이 언론에 보도돼 물의를 일으킬 수 있기에 바지를 대신해서 올려주는 강두의 자상한 성격을 묘사한다. 푼크툼적 요소는 관객들에게 일방적인 메시지 전달이 아닌 수많은 담론이 오고 갈 수 있는 장을 마련한다.

한국 사회를 불신하다
‘2000년, 용산 미군부대 영안실에서 다량의 포름알데히드가 한강에 무단방류된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후 독극물의 부작용으로 괴물이 생겨나고 평온한 일상을 보내던 한강에 나타나 시민들을 공격한다.’

김 교수는 “영화 「괴물」자체에는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의식이 깔려 있다”며 “기득권층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 이 영화의 숨은 의도”라고 설명했다. 봉 감독은 실제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시스템을 구원할 수 있는 비관론이 바로 나에게 있다”며 “독극물로 괴물이 생기고 그 괴물에게 더 강력한 독가스가 뿌려지는 악순환의 은유를 통해 사회모순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이 영화는 주한미군이 독극물을 방류한 실제 사건이 모티브다. 그러나 영화에서 미국은 재난의 원인 제공자이자 재난의 해결사 역할을 한다. 봉 감독은 “독극물로 괴물이 생기고 그 괴물에게 더 강력한 독가스가 뿌려지는 악순환의 은유를 통해 사회모순을 표현했다”고 전했다.

소시민을 다시 보다
‘괴물이 나타나고 강두가 자신의 딸의 손을 붙잡고 도망친다. 그 때 딸이 넘어지고 다시 맞잡은 손은 자신의 딸이 아닌 고아의 손이었다. 결국 딸이 죽고 강두는 살아남은 고아를 친 아들처럼 키우며 살아간다.’

영화에서 정부는 한강에, 심지어 대낮에 괴물이 나타나 시민들을 공격해도 합동분향소만 차려주는 것 외의 어떤 대응도 보이지 않는다. 강두의 가족이 괴물과 벌이는 싸움은 외롭다. 공권력의 개입은 부재하고 괴물과 싸우는 것은 전직운동권, 만년 3등 양궁선수, 노숙자, 도시 빈민 그리고 별 볼일 없는 소시민들이다.

김 교수는 “봉 감독의 연출론은 가장 밑바닥에 있고 가장 속된 사람들이 가장 성스러운 행동을 한다는 특유의 신념”이라고 전했다. 부족한 사람들임에도 그들끼리는 서로 더 약한 사람들을 돌보려 하는 모습을 보인다. 대표적으로 강두의 딸인 현서가 괴물에게 잡혀간 후, 자신이 죽을지도 모르는 위기상황 속에서도 자기보다 어린 아이를 보호하려 괴물과 맞서는 장면이다.

영화 「괴물」의 주인공은 매점을 운영하는 소시민이며, 영화의 줄거리도 소시민이 가지고 있는 가족애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봉 감독은 가족의 행복을 앗아간 ‘괴물’을 응징하려는 한 소시민 가족의 눈물겨운 분투를 그림으로써 사람들에게 ‘가족애’라는 궁극적인 가치관을 전한다.

영화 「괴물」은 헐리우드 재난영화와 다르게 열린 구조의 성격을 띤다. 이 구조에서 영화는 그 속의 언어, 이미지, 이념 등의 일정한 맥락 속에서 의미를 생성시키고 타인과 타인을 연결시키는 문화적 의사소통의 장이 된다. 이런 모든 것들은 역사적·사회적 상황에 연계돼있다. 이처럼 봉 감독의 연출론은 작품 속의 구성요소들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들과 어우러져 있어 관객들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게 된다. 그의 연출론을 충분히 이해한 뒤에 영화 「괴물」을 다시 감상해보는 것은 어떨까.

도움: 김윤지<예술대 연극영화학과> 교수
참고: 논문 「영화 속 재난에 나타난 사회적 함의와 그 성찰 - <괴물>을 중심으로」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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