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대학생활, 예의를 갖추자
성숙한 대학생활, 예의를 갖추자
  • 한대신문
  • 승인 2006.04.02
  • 호수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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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이 시작한후 교수님이 출석을 부르신다. 그때까지도 여러 학우들은 담소를 나누며 즐거운듯이 웃음 소리가 떠나가지 않는다.

마침내 그 웃음 소리는 교수님이 호명하시는 학생들의 이름소리 보다도 높아지고 이윽고 교수님은 출석을 부르시다가 멈추어 주위를 한 번 돌아보신다. 여전히 학생들은 자기들 끼리의 대화를 이어간다. 이는 우리가 흔히 접할수 있는 광경이다. 어느 수업에서도 낯설지 않은 모습이고 또 우리 주변에 가장 친근한 모습이기도 하다.

대학이라는 곳에서의 수업은 우리가 지난 12년을 보낸 여타의 학교와는 완전히 다른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 스스로 택한 과목을 듣는다는 점일 것이다. 자기 자신이 수업을 정해 해당 강의실로 수업을 들으러 이동하는 모습에서 여러 학우들은 비로소 대학생이 된 느낌을 받는 학우도 적지 않으리라 생각이 된다. 우리 학교에는 많은 훌륭하신 교수님들이 계신다. 그 분들의 강의를 듣는 우리들은 아마도 행운아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지만 과연 우리들은 그 분들에게 그 격에 맞는 행동을 했을까는 의심이 들지 않을수 없다.

대학과 예의. 이것은 관점의 차이에 따라 아주 밀접하게 혹은 전혀 상관 없게 보이기도 한다. 가장 일반적인 예로는 친한 학우와 수업중에 담소를 나누는 모습일텐데, 이것이 그 수업의 교수님에게는 수업에 재미 없음을 혹은 수업의 거부를 나타내는 모습으로 보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의란 바로 이러한 것들이다. 우리의 무의식적 행동 하나하나가 의미하는 바를 제대로 알고 그에 맞는 행동을 하는 것 그것이 예의이다. 그리고 그 예의를 지키기란 쉽지 않다.

어떤이는 ‘예의란 상대방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이야기도 어느 정도 일리는 있지만 만일 우리들의 모든 존경과 예의등이 두려움에서 나오는것이라 생각한다면 지난 12년 동안의 학창시절동안 사랑의 매라는 체벌에 너무 익숙해진 ‘노예 근성’에서 나오는 이야기 같아 거부감이 든다. 또한 적지않은 학우들이 이와 비슷한 이유로 대학에서는 권위적인 교수님 보다는 친근한 교수님을 원하는 것이 사실이고 이러한 배경에서 많은 학우들이 실수를 범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라고 말할수 있다.

권위와 계급을 없애고 모든이들을 평등한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 이와 같은 시각이 오늘날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경쟁력을 갖추는 중요한 사실임은 부인할수 없고, 우리들은 현재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쉬운 예로 TV 방송등에 나오는 수많은 원로 연기자들의 망가지는 모습과 코미디 프로에서의 은근한 권위깍기등을 예로 들수 있는데 이러한 일련의 일들과 우리 학우들이 가지고 있는 고등학교에서 벗어난 해방감등과 맞물려 대학에서의 교수님에 대한 존경과 예의 표현이 상당히 결여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가장 잔인한 달이라 불리우는 아름다운 4월이 다가온다. 하루하루 쌓여가는 대학 생활의 낭만속에서 한번쯤은 교수님들에 대한 예의와 배움의 자세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된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행동 하기 전 자신의 주변 학우들과 교수님을 한번 살피는 것 이런 간단한 행동으로부터 예의는 시작되고, 이러한 일들은 그리 어렵지 만은 않으리라 생각된다.

김민영 <국문대·불문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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