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소리를 만나러 떠나는 여행
우리의 소리를 만나러 떠나는 여행
  • 고석균 수습기자
  • 승인 2012.12.01
  • 호수 137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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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박물관에서 만난 천 년의 음악
▲ 국악박물관의 ‘선비음악실’에서는 직접 국악기를 연주할 수 있다.
고즈넉한 분위기의 돌계단을 오르면 푸른 소나무 틈 사이로 애절한 가야금 소리와 소리꾼의 노랫소리가 유유히 흘러나오는 곳이 있다.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 몸과 마음이 모두 깨끗해지는 곳. 천년의 역사를 지닌 우리의 소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 국내 유일의 국악 전문 박물관인 ‘국악박물관’에 다녀왔다.

입구에 들어서자 화려한 궁중 음악이 오감을 자극한다. 중앙에 서 있는 ‘건고’가 웅장하고 화려한 자태를 뽐내며 보는 이를 압도한다. 건고는 조선 시대에 왕실의 회례연 및 연례에 쓰던 큰 북으로, 악의 시작과 끝을 담당하는 중요한 악기다. 건고의 좌우에는 가야금, 거문고, 당비파 등의 현악기와 방향, 어, 특경 등의 타악기가 전시돼있다. 건고를 지나 앞으로 가면 나라의 잔치를 그린 병풍이 있다. 세밀한 그림 묘사와 음이 조화를 이뤄 마치 궁궐에 직접 온 듯한 느낌이다.

2층으로 올라가면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된다. 국악박물관은 원류음악실부터 근현대음악실까지 총 6개의 테마를 가진 전시실이 있다. 첫 번째로 원류음악실에 들어가니 피리 소리가 낭랑하게 울려 퍼진다. 이곳은 고대와 삼국시대의 음악에 사용된 악기를 만날 수 있다. 전시실에서는 동물의 뼈로 만든 뼈피리부터 삼국 시대의 예술작품에 표현된 악기들까지 모두 볼 수 있다. 또 가야금 공방을 재현해서 악기의 제작 과정을 볼 수 있다.

서민음악실에서는 대장장이가 인두를 지지며 노래하고 있다. 고된 노동의 힘겨움을 풀어낸 노랫가락이 무척 시원하고 흥겹다. 오른쪽을 보니 북청사자놀음의 사자탈이 보는 이를 깜짝 놀라게 한다. 잡귀와 액운을 쫓기 위해 만든 탈이다 보니 그 모습이 무섭다. 그 밖에도 굿과 농악에 쓰이는 악기들과 옛날 사람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사용한 악기들이 전시돼있다.

선비음악실로 발길을 옮기자 아까와는 달리 춘향가의 애절한 가사가 가야금 소리와 어우러져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 이곳에서는 옛날 악보를 보며 가야금과 거문고를 직접 연주할 수 있다. 신발을 벗고 올라가 직접 가야금 연주를 시도해 본다. 줄을 퉁겨 보니 12줄 하나하나마다 소리가 전부 다르고 음색 또한 아름답다. 고풍스러운 마루 위에서 가야금을 뜯는 이 순간만큼은 삶의 여유를 즐기는 선비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가야금의 선율을 뒤로 한 채 세종음악실로 향한다. 뛰어난 음악성을 가진 세종대왕은 편종과 편경을 국산화했고 새로운 음악을 담기 위해 정간보를 만들었다. 오른쪽에서는 편경을 직접 연주할 수 있다. 편경을 쳐 보니 색깔에 따라 소리가 다르다. 회색 편경에서는 낮고 둔탁한 소리, 하얀색 편경은 회색보다 좀 더 높은 소리, 그리고 청록색 편경은 높고 맑은 소리가 난다. 색깔마다 소리가 다른 이유는 편경의 성분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종은 이렇게 자신의 음악성을 이용해 우수한 악기를 제작했던 것이다.

세종의 지혜를 느끼고 음악인들의 복장이 있는 궁중음악인실을 지나 마지막 전시실인 근현대음악실에 도착했다. 때묻은 CD와 카세트테이프와 LP판들이 그 시절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누렇게 변한 가사지들은 오랜 세월을 짐작케 한다. 나란히 놓여 있는 나팔식 유성기와 가방식 유성기에는 금방이라도 LP판이 돌아가 그 옛날의 음악을 들려줄 것만 같다. 가운데에는 최근 진행한 국악 공연들을 보여 주고 있었다. TV 화면에는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판소리를 하는 여자가 있었다. 이로써 수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시간여행에 마침표를 찍었다.

국악박물관에서는 고대 국악부터 현대 국악까지 다양한 우리 음악들을 접할 수 있다. 평소 듣던 음악과는 사뭇 다르지만 마음이 가벼워지는 음악이 많은 곳이다. 오늘도 이곳은 반복되는 기계음에 지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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