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공동체 형성의 장이 돼야
대학, 공동체 형성의 장이 돼야
  • 한대신문
  • 승인 2006.04.02
  • 호수 12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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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김 정 기 <언정대·신방> 교수
“배달음식도 혼자 먹고, 혼자 공부하고, 혼자 즐기는” 나홀로족(코쿤족) 대학생이 증가하고 있다는 한대신문(3월 13일)의 보도를 접하며 이거 큰일이구나 하는 우려가 생긴다.

대학만의 문제가 아니고 사회와 세상의 변화에 따른 생활패턴의 변화이며, 따라서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서 생활하는 사람이 더욱더 늘어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코쿤족을 자처하는 학생의 의견도 이해한다. 그러나 이 현상의 자연스러움을 인정하면서도 대학생은 자신이 선택한 가치의 수용체로서의 대학을 다른 학생들과의 소통의 장소로 과감하게 활용해야 한다는 점을 새삼 강조하고 싶다. 대학생활을 통해 거리낌 없이 타인을 만나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사회생활에 필수불가결한 공동체감을 배우라는 의미이다.

대학은 젊음의 절정, 열광할 수 있는 정점에 이른 대학생으로서 자신이 하려고 하는 일,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에 대해 진지하게 논쟁하고 이해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자신의 현실을 자신이 결정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나 드러내기 싫은 은밀한 절망마저도 꺼내어 놓고 동료나 선후배, 교수와 함께 이리저리 뒤집어 보고 생명력을 불어 넣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다양성을 수용하는 공동체감을 형성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고유한 자신의 자아(自我)를 철저히 자각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타인을 발견하고 외부를 체험함으로써 자신의 경험이 개인적 경험만으로 그치지 않고 경험일반으로 확대돼 우리가 사는 현실을 정확하게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공동체감이 잘 형성될 때 그 결과가 얼마나 근사한 것인가는 이번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우리나라 야구팀이 보여줬다. 선수에 대한 감독의 신뢰, 부진한 선수에 대한 믿어주기. 뉴욕 양키즈의 강력한 타자이면서도 일본팀에 합류하지 않은 마쓰이 선수와는 대조적으로 조국의 부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박찬호 등의 메이저리거들. 나이 차이를 무시하고 후배 선수들에 솔선수범한 선배 선수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팀원들간에 자유로운 커뮤니케이션 분위기와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엮어낸 단합의 결과는 우승한 일본팀을 2번이나 꺾는 결과로 나타났다. 선수 개개인으로는 이루어 낼 수 없는 성적을 팀이라는 공동체로서는 이뤄 낸 것이다. 공동체감은 이러한 것이다.

그러나 공동체감을 잘못 형성하면 사회적 해악을 미칠 수 있음도 유의해야 한다. 우리사회의 망국적 고질병인 혈연 지연 학연에 근거한 불공정거래가 그 예이다. 우리사회가 변화하면서 새롭게 등장한 차별도 있다. 외국인 노동자를 차별하는 것이다.

1963년에 8월 28일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을 이끌던 마틴 루터 킹 목사는 흑백인종차별정책의 비인륜적이고 비지성적인 참담함을 고발하면서 자신의 네 아이들이 피부색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격에 의해 평가되는 나라에서 살 수 있는 꿈을 얘기했다. 아시아계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잔인한 차별과 배타성이 있는한 남의 나라의 비극이 아님을 반성해야 한다. 차이는 차별할 이유가 아니라 다양함과 풍요로움이라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봄기운이 봄바람을 따라 캠퍼스에 향기처럼 퍼지는 계절이다. 아직 가보지 않은 캠퍼스의 여러 곳을 찾아가 보라. 두려움없이 사람을 만나보라. 여기저기의 벤치에 앉아 옆 사람과 담소를 나눠 보자. 강의실에서 평소에 그냥 지나치던 이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자. 새내기들을 예쁘게 유혹하는 동아리들의 광고에 귀 기울여 보고 동아리에 가입해 보라. 학과와 학회의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자. 교수 연구실도 방문해 얘기를 나누고, 함께 놀자고 청해 보자. 최인훈이라는 소설가는 광장이라는 유명한 소설에서 인간은 밀실과 광장을 오가며 사는 존재라고 했다. 대학이야 말로 밀실과 광장이 기탄없이 만나는 장소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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