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 않는 기계, 사라져가는 인간
멈추지 않는 기계, 사라져가는 인간
  • 노영욱 기자
  • 승인 2012.12.01
  • 호수 137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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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에 파묻혀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 연극 「수레바퀴」
   
  ▲ 끊임 없는 노동속에 인간은 물질화되고 이는 결국 인간성의 붕괴를 가져온다.
   
  ▲ 건방진 여대생 주니의 말과 행동이 오른쪽 재봉틀에서 일하는 괴덕에겐 하찮게 보일 뿐이다.  
 
지난 28일 연극 「수레바퀴」를 감상하기 위해 대학로로 향했다. 혜화역 1번 출구로 나와 오른쪽으로 조금 걸은 후 직진하자 비교적 쉽게 연극 「수레바퀴」가 공연되고 있는 ‘정보소극장’을 찾을 수 있었다. 공연장으로 향하는 계단 옆에는 연극 포스터가 가득 붙어 있었다.

공연 시작 직전에 도착해서 그런지 객석은 이미 관객들로 차 있었다. 일반 코미디 연극이 아니라서 관객이 많이 오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꽤 많은 사람들이 있어 놀랐다. 무대엔 가운데에 두 개의 재봉틀이 있고 양 옆으론 책상이 하나씩 있었다. 오 른쪽 뒤편엔 다림판이 있고 가운데 뒤편엔 교복이 꽂혀진 옷장이 있었다. 오른쪽 무대의 천장에 달린 세 개의 실타래는 관객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갑자기 무대가 암전된다. 무대가 시작되는 것을 알아차린 관객들은 하던 말을 멈추고 무대에 집중한다. 이윽고 한 젊은 여성이 관객용 입구에서 등장해 공장의 불을 켠다. 그녀는 차가운 표정으로 왼쪽 책상으로 가 외투를 벗어 옷걸이에 걸고 자리에 앉는다. 컴퓨터를 켜고 손에 핸드크림을 바르고 물을 마시는 등 하루 일과를 아무 말 없이 시작한다. 꽤 시간이 흐른 뒤 또 다른 중년의 여성이 들어와 오른쪽 책상에 앉는다. 그녀 역시 아무 말이 없다. 인사도 없던 그녀가 처음 하는 말은 “왜 취소된 거야?”라는 한마디다.

두 명의 청년이 서로 낄낄대며 등장하자 침묵으로만 가득 찼던 공장이 조금씩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한다. 키 큰 청년이 저번에 말했던 친구라며 키 작은 청년을 소개하자 키 작은 청년은 자신의 이름을 크게 외치며 첫인상을 좋게 심으려는 듯 인사를 열심히 한다. 이에 왼쪽 책상에 앉아 있던 여자가 차갑게 반응하며 잡일을 시킨다.

각자 열심히 일을 하는 도중 일본인, 중국인, 그리고 한국인이 요란스럽게 등장한다. 키 작은 청년은 처음 보는 사람이 등장하자 또 열심히 인사를 하고 한국인은 “그대는 예의를 아는 친구구료”라며 한껏 너스레를 떤다. 일본인은 왼쪽 뒤, 중국인은 왼쪽 재봉틀, 한국인은 다리미가 있던 자리로 돌아가 일을 시작하자 한 중년 여성이 모든 직원에게 인사를 하며 오른쪽 재봉틀에 앉는다. 그녀 역시 새로운 인물에 관심을 갖고 이것저것 물어본다. 청년은 자신을 태권도 선수라고 소개한다. 하지만 오른쪽 책상에 앉아 있던 중년 여성은 태권도 선수가 왜 이런 공장에 일을 하냐며 그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쳐다본다. “집에 가라니까”라고 신경질적으로 반응하자 왼쪽 책상에 앉아 있던 여성은 “성실하게 일해야 해요”라며 그 청년의 취직을 허락한다.

잡담이 끝나고 모두들 다시 일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이때 뚱뚱한 모습의 늙은 남성이 등장하자 모두들 갑자기 인사를 하며 또 공장이 소란스러워진다. 이 남성은 공장 사장이다. 그는 함께 온 여대생을 소개한다. 사장을 ‘할아버지’라 부르는 그녀는 사장 친구의 딸로 잠시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인물이다. 직원들에게 잘 대해라는 부탁을 하자 여대생은 밝고 명랑하게 자신을 소개한 뒤 “일은 알아서 배울 테니 신경 쓰지 말라”며 다소 건방진 말을 내뱉는다. 사장이 일과를 시작하자는 말을 하자 모두들 자리에 일어선다. 무대에 갑자기 노래가 흘러나오고 모든 직원들은 “우리는 사장님 말만 잘 들으면 절대 굶지 않는다”를 반복하며 합창을 한다.

일하던 직원들은 새롭게 들어온 직원과 함께 계속 반복된 작업을 한다. 정신 차릴 틈도 없이 주문은 밀려오고 해야 할 일은 산더미지만 이들은 서로 생일을 챙겨주고 회식을 하며 친해진다. 특히 오른쪽 재봉틀에서 일하는 여성이 그녀의 남편이 진 빚 때문에 고리대금업자에게 시달리자 이를 돕는 모습은 이들이 얼마나 서로를 생각하는지 보여준다.

부모님의 병환으로 한국을 떠난 중국인을 대신해 일을 하는 사장과 함께 평소와 다름없이 기계처럼 일을 하는 공장 직원들. 그런데 퇴근 직전 들려오는 라디오에서 교복 폐지를 알린다. 사장은 반품을 요구하거나 교복 주문을 취소하는 전화에 “사실이 아닙니다”라며 수습하려 하지만 역부족이다. 직원들은 동요하기 시작한다. 여대생은 “여기서 방법을 찾아야죠”라며 직원들을 붙잡지만 모두들 매정하게 자신의 살길을 찾아 떠난다.

여대생과 공장에 남은 사장. “공장은 기계가 있는 곳이 아니라 인간이 있고 이로서 인간에 의해 움직이는 것인데 왜 기계만 보는 걸까? 사람이 없으면 모든 것이 멈춰 버리는 거야”라며 절규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돼버렸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장은 옆문으로 황급히 뛰어 나간다. 이윽고 공장엔 한 발의 총성과 여대생의 울부짖음만 남는다.

사진 제공: 극단 창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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