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서 ‘찍힌’ 놈들, 내가 다시 ‘찍는다’
사회에서 ‘찍힌’ 놈들, 내가 다시 ‘찍는다’
  • 이다원 기자
  • 승인 2012.11.25
  • 호수 137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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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태로운 청춘들이 부르는 희망의 노래, 연극「찍힌놈들」

▲ 소년 장기수들이 모여 새로운 일을 꾸미고 있다.
‘책임 있는 삶을 살며 선택한 삶에 책임진다.’ 텅 빈 무대 가운데에 나무간판 하나가 덩그러니 달려 있다. 좁은 소극장 무대에 엄숙한 분위기가 내려앉는다. 곧이어 어려보이지만 마냥 앳돼 보이지만은 않은 소년 무리들이 등장한다. 이들이 입고 있는 옷들은 하나같이 빛바랜 청색이다. 왼쪽 가슴에 수놓아진 각기 다른 6자리 숫자들에 관객들의 궁금증이 더해진다. 이어지는 대화를 통해 이곳과 이들의 정체가 밝혀진다. 소년 교도소의 소년 장기수들이다.

무대를 밝히던 조명이 꺼지고 무대 밖 어디선가 불빛이 새어나온다. 불빛을 따라 관객들의 시선도 옮겨간다. 관객석 한쪽 구석. 극장에 숨겨진 또 다른 무대 공간이다. 잘 차려입은 남자 여럿이 소년 교도소에 대한 뉴스를 보고 있다. 조용한 공간에 갑자기 날카로운 한마디가 울려 퍼진다. “본부장한테 연락해. 저놈들, 내가 찍는다고.”

김대주 PD는 방송국에서 휴먼 다큐를 찍는다. 소년 장기수들에 대한 뉴스에 그의 눈이 반짝인다. 김 PD의 관심사는 오직 이들의 이야기로 화제를 만들어내는 것뿐이다.  

살인을 저질렀다는 재강이, 한껏 애교를 부리는 모양새가 살인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같은 반 친구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는 소민이, 해맑은 표정으로 하염없이 비눗방울을 만드는 순수한 아이다. 23건의 방화사건을 저지른 지성이, 행동과 말투는 거칠어도 그 속에 누구보다 주변 사람들을 아끼는 마음이 드러난다. 절도 전과가 있는 윤호, 교도소 내에서는 성실하고 올바른 성품으로 모범수로 꼽히는 소년이다.

김 PD는 아이들에게 밴드를 만들어 노래를 부르자고 제안한다. 시청자들의 감성을 자극해 프로그램을 홍보하려는 속셈이 엉큼한 눈빛으로 드러난다. 아이들은 형이 줄어들 수도 있다는 생각에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이들의 두 손이 무대 한가운데서 모인다.

▲ 소년 장기수들이 진심을 담아 노래하고 있다.
한껏 들뜬 아이들이 마음에 드는 악기를 제각기 하나씩 집어 든다. 이들도 새로운 것이면 설레고 마는 철없는 아이들인 모양이다. 다루지도 못하는 악기에 우르르 몰려들어 어설프게 포즈를 취한다. 이를 지켜보는 이들의 얼굴에도 절로 미소가 피어난다.

그러나 김 PD와 소년 장기수들의 관계는 마냥 순탄하지만은 못하다. 김 PD에게 아이들은 전과자다. 그저 윽박지르고 명령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교도소 밖 사람들과의 소통에 서툴다. 때로는 아이처럼 약하고 때로는 누구보다 날카롭다. 보는 이들까지 아슬아슬하게 하던 이들의 불안한 만남은 결국 주먹다짐으로 이어진다. 극장에 긴장감이 팽배해진다.

그날 밤 교도소에서는 아이들의 허심탄회한 대화가 이어진다. 아이들의 처진 어깨에 관객석 분위기도 가라앉는다. 저지른 죄 때문에 사랑하는 가족들을 애써 밀어내고 있는 재강이의 이야기. 홀로 남기고 온 할머니 생각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윤호의 이야기에 관객석에서는 훌쩍임까지 들린다. 친구를 지키려다 폭행 아닌 폭행을 저지른 소민이. 누군가의 진심어린 사랑과 관심을 바랐던 지성이. 이윽고 무엇을 그리 물끄러미 보는지 아이들의 눈이 하나같이 철장 밖을 향한다. 천장에 매달린 철장 모형이 그제야 관객들의 눈에 들어온다. 작고 낡은 철장사이로 한 줄기 빛이 비추고 극장에는 알 수 없는 씁쓸한 기운이 맴돈다.

김 PD와 아이들은 비로소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실수와 오해, 상처가 거듭나 세상 앞에 움츠러들 만큼 움츠러든 아이들. 김 PD는 다시 한 번 세상을 향해 우리의 목소리를 내보자고 손을 건넨다. 스틱을 마주치는 소리가 ‘탁 탁’ 울린다. 곧이어 소심하고 조그맣게 드럼과 기타 소리가 시작된다. 아이들의 손짓 하나가 음이 되고 쌓인 음들이 노래가 된다. 아이들이 음악에 심취해 행복한 표정을 짓자 이들의 노래는 비로소 완성된다. 지켜보는 관객들의 표정에도 서서히 미소가 떠오른다. 성인으로 위태롭게 성장해가는 청소년과 이를 감싸 안고자하는 어른, 이들의 노래에서 어떤 이는 위로를 받고 어떤 이는 희망을 본다.

사진 출처: 극단 내여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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