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초월한 획기적인 초상화의 등장
시대를 초월한 획기적인 초상화의 등장
  • 박수빈 수습기자
  • 승인 2012.11.24
  • 호수 137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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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 신비로운 두 남녀가 손을 마주 잡고 있다.
르네상스의 바람이 불던 15세기, 북유럽인들이 자연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이들에게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려는 경향이 널리 퍼졌다.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일어난 르네상스와 달리 이상적인 비례를 보여줄 고전 조각품이 없었기 때문이다. 벨기에 플랑드르 출신의 ‘얀 반 에이크’는 이런 북유럽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다. 얀은 초상화에 뛰어난 궁중화가였다. 그는 왕과 귀족의 초상화가 대부분이었던 시절에 시민계급을 주인공으로 한 전신초상화를 그렸다. 또 유화 기법을 사용해 사실적인 표현을 극대화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 중에서도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은 이런 그를 근대 사실주의 초상화가로 자리매김하게 한 작품이다.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은 △화려한 색채 △겹쳐 입은 옷의 주름까지도 묘사한 사실적인 표현 △경험에 의한 깊이의 표현 △그림 속 침대시트가 벨벳소재라는 질감이 느껴질 정도로 사물 표면의 질감을 정확하게 묘사한 표현 수법이 돋보인다. 이는 15세기 플랑드르 지역에서 성행했던 전형적인 양식이다. 이정순<생활대 의류학과> 교수는 “사실주의 기법의 대표작답게 그림 속 거울에 비쳐진 인물의 모습까지도 세밀하게 묘사돼 있다”며 “고루 퍼져있는 빛의 효과를 통해 세부묘사를 완성함으로써 사진과 같은 효과를 냈다”고 말했다.

한편 이 작품은 두 남녀가 성스러운 의식을 치루는 것처럼 보여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도서 「세계명화의 수수께끼」에서 20세기 미술사학의 거장 ‘파노프스키’는 이 작품에 대한 흥미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그는 이 초상화가 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 증명서’이며 그림 속 소품들이 결혼을 상징한다고 주장했다. 그림 속 여러 가지 평범한 장치들이 사실은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는 ‘위장된 상징주의’ 라는 것이다.

그는 대낮인데도 샹들리에를 밝히는 단 하나의 초가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오렌지는 금단의 열매인 선악과를 뜻하는데 이런 의미로 보면 창틀에 놓인 오렌지는 원죄 이전의 순수한 영혼으로 돌아가려는 염원을 나타낸다. 또 신랑이 가슴 앞에 올린 오른손은 결혼을 서약하는 것이며, 이에 대응해 신부가 배위에 올린 왼손은 이 결혼을 수락한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부부의 마주잡은 손 위에 있는 마르가리타 상은 자식에 대한 소망 △부인이 입은 드레스색인 녹색은 다산 △그림 속 부부가 아무렇게 벗어 던진 신발은 결혼식이 치러지는 장소의 성스러움 △발밑에 있는 강아지 한 마리는 변함없는 애정과 충절을 의미한다. 또 거울 위에 적힌 의문의 숫자는 결혼연도이며 크리스털과 묵주는 신랑이 신부에게 주는 선물과 순결을 뜻한다. 그리고 벽에 걸린 거울 속에 비친 제3의 인물은 결혼식의 증인인 화가 얀이다. 증거는 “1434년 얀 반 에이크가 여기 있었다”는 거울 위 화가의 사인이다.

이외에도 △값비싼 모피 △베네치아에서 만든 거울 △스페인산 오렌지 △동방에서 온 카펫 등을 통해 그는 15세기 유럽 상인계급의 삶을 기록했다. 또 그가 그림에 나타낸 △그림 속 강아지의 털마저 세밀하게 그려낸 사실주의적 표현 △창의 조명을 통한 입체적인 표현 △유화물감을 통해 깊고 선명한 색채를 구현해내는 기법 등은 후대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이런 표현기법이 잘 드러난 그의 다른 작품들로는 「남자의 초상」,「수태고지의 성모마리아」,「마르코 바르바리고」 등이 있다.

참고: 도서 「세계명화의 수수께끼」, TV프로그램 「명작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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