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까지 대외활동 해야 하나요”
“이렇게까지 대외활동 해야 하나요”
  • 이우연 기자
  • 승인 2012.11.24
  • 호수 137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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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하게 운영되는 대외활동, 학생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이젠 더 이상 대외활동에 참여하고 싶지 않아요.”

구글의 대학생 마케터 ‘구글 브레인’ 활동을 했던 박수현<언정대 홍보전공 10> 양의 푸념이다. 학교 외적인 경험을 얻어야한다는 생각에 그녀는 작년 6월 해당 대외활동에 지원해 합격했고 활동하기 시작했다. ‘구글 브레인’은 작년 11월에 취업포털사이트 ‘잡코리아’와 대학생 취업잡지 ‘캠퍼스 잡앤조이’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20대가 꼽은 최고의 대외활동으로 꼽혔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최악의 대외활동으로 기억될 뿐이다.

‘구글 브레인’은 1차부터 3차에 걸친 온라인 및 오프라인 미션의 점수를 누적해 총 20팀 중 우승팀을 가려내는 형식의 활동이다. 박 양이 속한 팀은 1차와 2차 미션 모두 우승을 하며 최종 우승을 기대하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구글 측으로부터 갑작스런 통보를 받았다. 1차와 2차 미션 결과를 배제하고 오로지 3차 미션을 통해서만 우승팀을 가려내겠다는 것이다. 갑작스런 규칙 변경을 납득할 수 없던 박 양과 소속팀에게 구글 측은 “그 쪽 팀이 잘해서 다른 팀의 사기가 떨어졌다”며 “95명을 위한 5명의 희생은 불가피한 것”이라 해명했다. 결국 박 양과 소속팀은 큰 상실감에 휩싸였고 최종 우승은 3차 미션에서 우승한 다른 팀에게 돌아갔다. 박 양은 “애초에 명시한 규정을 도중에 바꿔‘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당시의 착잡했던 심경을 털어놓았다.

최근 몇 년 전부터 학생들의 ‘스펙’ 항목에 ‘대외활동’이라는 단어가 추가되기 시작했다. ‘대외활동’은 학교 외부에서 하는 활동을 뜻하며 주로 기업이나 단체, 기관 주최로 마케터나 홍보대사, 서포터즈, 기자단, 봉사활동, 공모전 등의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기업은 창의적이고 유능한 대학생들을 기업의 홍보와 운영에 이용할 수 있고 학생들은 현장경험을 하고 학생들 간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외활동을 선호하고 있다.

경쟁과정도 치열하다. K기업의 서포터즈로 활동하고 있는 익명을 요구한 A양은 “실제 인사담당자들이 참석해 면접을 봤고 대학생들도 기업 면접생처럼 정장을 입고 왔다”고 면접 분위기를 밝혔다. 대학생들이 개인기를 뽐내고 노래를 부르고 춤추는 등 오디션 현장을 방불케 하는 면접 현장도 있다.

이렇듯 대외활동을 하고자 하는 대학생들이 늘어나면서 각종 대외활동 프로그램이 너나할 것 없이 등장하고 있다. 현재 기업이나 단체, 기관에서 운영하는 대외활동 프로그램은 연간 6천여 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이와 함께 부작용도 등장하고 있다.

아르바이트 수준의 활동에 ‘보여주기식’ 운영, 아이디어 도용까지…

앞선 사례에서 지적한 것과 같이 명시된 혜택이나 활동 내용을 보장하지 않는 경우 외에도 △활동 내역을 모호하게 명시해놓고 실제로는 SNS에 단순 글 퍼나르기나 전단지 돌리기와 같은 아르바이트 형태의 일을 시키는 경우 △담당부서나 체계적인 활동 없이 인증서만 발급하는 경우 △저작권 존중 없이 아이디어를 무단으로 도용하는 경우 등의 사례가 있다.

로드샵 화장품으로 유명한 T사에서 대학생 마케터로 활동했던 익명을 요구한 B양은 “활동 내역에는 나와 있지 않은 아르바이트 형태의 활동이 주가 돼서 황당했다”며 사례를 제보했다. 공고 당시 모집 포스터에서는 활동 내역으로 신제품 아이디어나 마케팅 방향 제안, 신제품 품평 등을 제시했지만 실제 주로 했던 활동은 각종 SNS로 화장품 후기를 퍼나르는 것이었다. 신제품 홍보라는 것도 결국 무작정 길거리에 나가서 화장품 샘플을 많은 사람들에게 뿌리는 활동이었다. 이처럼 활동은 단순 아르바이트 형식을 벗어나지 못했다. B양은 “모집 포스터에 우수한 활동을 한 대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한다고 했었는데 여기서 말한 우수한 활동이라는 것은 결국 같은 후기를 가장 많은 곳에 퍼나르는 것이었다”며 “마케팅을 배우고 싶어 지원했지만 마치 판촉사원처럼 대학생들을 대하는 회사의 태도에 실망을 했다”고 말했다.

대기업 G사에서 주최한 대학생 봉사단으로 활동했던 익명을 요구한 C양은 좋은 마음으로 봉사활동을 하려고 지원했지만 부실한 운영에 적잖이 실망했다. C양은 봉사단 내 여러 팀 중 ‘청소년’을 대상으로 봉사하는 팀으로 배정이 됐다.

그러나 다른 팀들과는 다르게 그 팀은 연계된 기관이 없었다. C양의 팀은 봉사활동을 할 기관부터 직접 섭외해야 했다. “우리 팀이 기획한 봉사활동 계획은 매번 예산에 맞지 않다며 퇴짜를 맞아 1년 동안의 봉사단 활동 중 3번 밖에 봉사활동을 하지 못했다”며 “진척이 없는 활동을 보며 우리는 기업 측에서 ‘버린 팀’인가 할 정도로 회의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또 C양은 “이렇듯 평소에는 ‘나 몰라라’ 했으면서 정작 힘들게 진행한 봉사활동이 호응을 얻자 해당 기업이 ‘우리는 사회에 선행하는 착한 기업’이라고 생색내는 것을 보았고, ‘보여주기식’ 대외활동에 이용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앞서 ‘구글 브레인’의 사례를 들었던 박 양도 또 다른 황당한 경험을 했다. 담배회사 K사에서 주최한 공모전 프로젝트에서 그녀의 소속팀이 제시한 아이디어가 상의 없이 도용됐던 것이다. “모든 심사위원으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한 심사위원이 납득할 수 없을 정도인 낮은 점수를 줘 결국 우승을 하지 못했다”며 “우승팀이 아니면 어떤 보상도 없었는데 몇 달 뒤 우리가 제안한 제품의 컨셉이나 홍보 방식이 조금만 바뀐 채 사용되고 있는 것을 목격해 당황스러웠다”고 밝혔다. 그러나 거대한 기업을 상대로 그녀가 할 수 있는 조치는 그 어떤 것도 없었다.

 

기업의 자성과 청년고용의 증대가 필요

이렇듯 중구난방으로 생겨나는 대외활동 때문에 피해를 입었음을 호소하는 학생들이 많지만 ‘을’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앞선 사례의 해당자들 모두 입을 모아 이야기하기를, 활동 도중 운영이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나 중간에 쉽게 박차고 나올 수는 없었다는 것이었다.

C양은 “결국 구조의 문제인 것 같다”며 “‘열정 노동’이라는 말이 유행이 됐던 것처럼 기업은 대학생들의 ‘열정’을 이용해 부실한 대외활동을 운영하고, 학생들은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채우기 위해 이런 대외활동을 거부하지 못하는 등 악순환이 되고 있다”며 현상을 진단했다.

이런 기업의 대학생 대외활동 프로그램이 등장한 것은 20대 실업률이 높아진 시점과 맞물린다. 김민수<청년유니온 기획팀> 팀장은 “기업의 일자리 공급은 그대로였지만 취업을 하고자 하는 취업준비생들의 수요가 늘어나니 기업 입장에서는 대외프로그램과 취업박람회 등을 ‘보다 질 좋은’ 취업준비생을 고르는 도구로 이용하게 됐다”고 등장 배경을 밝혔다.

이런 대외활동을 통해 기업이 얻을 수 있는 효과에 대해 김 팀장은 “SNS마케팅이나 브레인스토밍 등에 필요한 인력을 대학생으로 대체함으로서 인건비 절감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며 “기업은 본연의 역할이라 할 수 있는 신규 채용을 늘리는 대신 인턴이나 대외활동 프로그램 등을 통해 ‘면죄부’를 획득하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기업의 자성과 전반적인 청년고용률의 증가만이 유일한 해법으로 보인다.

B양은 “이젠 로드샵 화장품 T사의 제품을 절대 구입하지 않는다”며 “방만한 운영이 계속되면 단기적으로는 마케팅 효과를 얻을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이미지에 손실을 줄 것”이라며 일부 기업의 각성을 강조했다.

김 팀장 또한 “대외활동은 법적 가이드라인을 설정한다하더라도 그 기준이 애매한 영역”이라며 “청년고용의무할당제’ 혹은 비슷한 정책을 통해 청년 고용의 안정성이 보장될 때 이 문제는 함께 희석될 것”이라 말했다.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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