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를 생각한다
한류를 생각한다
  • 최병효<국제학부> 강사
  • 승인 2012.11.14
  • 호수 137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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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말부터 한국의 드라마가 일본. 동남아, 중국어권 등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한국 대중문화의 국제적 확산을 중국에서 한류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 후 동양을 넘어 미국 내 아시아인 사회까지도 한국의 드라마. 영화와 음식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다가 싸이의 「강남스타일」로 대표되는 K-Pop에 대한 세계 젊은이들의 열기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동양하면 중국과 일본, 인도, 태국 등의 문화만을 생각해온 서양 주류사회에서도 한국문화에 어느 정도 접할 기회를 가지게 됐지만 한국문화는 아직 주로 아시아권과 중동권, 서양사회 내 동양계 중심의 화두라고 생각된다. K-pop으로 인해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지는 효과가 있음은 분명하지만, 이는 기본적으로 서양문화를 그들에게 재소개한 것이므로 그 열기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는지는 좀 더 두고 봐야 될 것 같다.

유럽과 미국 등 서구문명권에서 20년 가까이 외교관으로 근무하면서 우리의 문화를 서양사회에 소개하며 느꼈던 소견을 언급하고 싶다. 중국은 이미 2천여 년 전 진나라 때부터 실크로드를 통해 로마제국과 교류를 하면서 서양문명과 쌍벽을 이루는 문명이 동양에 있음을 알린 바 있다. 일본도 16세기 중반 이래 제한된 지역이지만 서양과 교류의 문을 계속 열어둠으로써 일본이라는 또 하나의 수준 높은 문명국이 동양에 있음을 알려왔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조선시대 5백여 년간 사대사상과 폐쇄적 유교이념에 얽매여 밖으로 눈을 돌리지 못하고 급기야는 야만으로 알고 무시해온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수모를 겪은 바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세계에 자랑할 만한 고급문화 콘텐츠를 상당 수 가지고 있다. 이러한 문화적 바탕 위에서 우리 경제가 발전하고 세계화가 진전됨에 따라 한류라는 파생상품이 나오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한류라는 말 그대로 흘러가 버리고 마는 대중문화 위주로만 한국문화가 알려진다면 그 수명은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한류의 모태인 우리의 고급 전통문화 중 무엇을 어떠한 방식으로 세계에 소개할지 좀 더 고민해야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글 알파벳이 아무리 우수하다고 해도 많은 정부예산을 들여 이를 외국 소수문맹부족에게 소개하는 일은 무모하고 무의미한 일이다. 한글과 같은 표음문자인 로만 알파벳이 이미 오래 전에 세계를 제패했기에 우리가 도전할 일은 아닌 것이다. 남이 갖지 못했거나 세계적으로 경쟁 가능한 우리의 고급문화 전통들을 발굴하고 발전시켜 알리는 것이 보다 효과적일 것이다. 미국 내 수백 곳과 유럽 각지에 산재해 있는 수많은 일본정원, 이제 세계 각지로 퍼져 나가기 시작하는 중국정원을 보면서 나는 우리 전통정원이 보다 더 아름답고 환경 친화적이며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돼 미국 내에 최초가 될 본격적인 한국정원 조성계획을 L.A에서 추진한 바 있다. 우리의 도자기 전통과 한식도 이를 계속 발전시킨다면 세계인들의 삶에 깊이 각인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된다. 우리의 오랜 역사 속의 사건들도 세계적인 예술이나 문학작품의 소재가 될 수 있다. 세계화와 문화융합의 시대에 전통문화만 고집하는 국수주의는 경계해야 되지만 차별화 될 수 있는 문화를 전통 속에서 찾아내고 이를 현대적으로 재창조해 나가는 것은 한류가 일시적이 아니라 영구적인 현상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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