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성과 스펙
적성과 스펙
  • 박시준<호남석유화학 PEE담당>
  • 승인 2012.11.04
  • 호수 137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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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입학하면서, 전과를 고민하면서, 직업을 정하면서, 우리는 수없이 ‘적성’이라는 문제로 고민을 거듭한다. 설사 심사숙고하여 진로를 정했더라손 치더라도 적성에 의구심을 갖고 있다. 이는, 언제든지 ‘이 분야, 이 일은 내 적성과 맞지 않아’라는 합리화로 중도하차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적성을 탓하는 경우는 크게 2가지라고 생각된다.

첫째, 해보지도 않고 적성을 논하는 경우이다.

이 세상에서 노는 것이 적성에 안 맞다고 말하는 사람을 보았는가? 경제적, 시간적 제약으로부터 자유롭다면 노는 것 자체가 적성에 안 맞는 사람은 없다. 그 이유는 모든 사람은 놀아 봤기 때문에 아는 것이다. 심지어 나는 놀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해봤기 때문이다. 적성을 탓하기 전에 첫술을 떠서 먹어보고 기호를 판단해도 늦지 않는다.

둘째, 적성에 맞는 일은 그대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다.

그대에게 그대의 적성에 맞는 일은 무엇인지 물어보고 싶다. 적어도 인생사에서 적성에 맞는 일이란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일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당신을 힘들게 하는 적성이 내 자신과 가족을 책임질 수 있고 내가 경험하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것을 갖게 해준다면 그것이 적성에 맞는 일이다.

미안한 말이지만 결국 노는 일은 적성에 맞는 일이 될 수 없다. 그대가 적성이라는 핑계로 현실도피를 하기 위해 선호하는 일은 냉정하게 취미에 더 가깝다.

남은 또 하나의 관문은 스펙이다. 요즘은 ‘스토리가 스펙을 이긴다’라고 말한다.

스펙은 누구보다도 잘 아는데 ‘도대체 스토리는 어떻게 만들어야 하지’라는 의구심을 누구나 다 갖게 마련이다. 스토리에 대한 답을 알기 전에 스펙은 정말 잘 알고 있는가를 묻고 싶다.

스펙을 쌓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부여 받고 방학 전부터 동분서주하게 사냥감을 찾아 나선다. 이력서에 한 줄 한 줄 채워나가는 그 쾌감으로 스펙을 쌓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정말 다양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스펙이 될 수 없다’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에게 스펙은 핸드폰처럼 얼마나 많은 기능을 가졌는지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당신의 자아를 실현시켜 줄 스펙은 얼마나 한 분야에서 밀도 있는 이력을 소화했는지를 나타낸다. 당신의 분야에서 이뤄낸 빛나는 활약을 시간 순서로 나열한다면 자연스레 인과관계가 성립할 것이고 전문성은 자연스레 추가옵션이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스토리다. 결코 스펙과 스토리가 다른 것이 아니다. 같은 것이다. 기계적 스펙을 기준으로 줄을 세우는 곳이라면 과감히 떠나라고 말하고 싶다. 여러분은 기계가 아니다. 기계가 만들지 못하는 스토리를 만들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괴테는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Es irrt der Mensch, solange er strebt)”라고 했다.

지금 방황에 불안하지 않았으면 한다. 방황은 낭비가 아니다. 여러분은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조바심으로 손에 쥔 모래를 더 세게 쥐면 빠져나갈 뿐이다. 긴 방황으로 인해 설령 모래가 한 톨만 남게 되더라도 그것은 금가루일 것이다. 이는 이미 적성에 맞는 일을 가지고 있고 당신의 스토리는 Climax라는 반증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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