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는 나의 힘
질투는 나의 힘
  • 박재완<법대 법학과> 교수
  • 승인 2012.11.04
  • 호수 137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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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제목의 작품으로는 시와 영화가 있다. 시보다는 먼저 영화를 2004년경 만났다.

2003년 개봉된 영화의 감독은 박찬욱이 아닌 박찬옥, 주연은 박해일(이원상 역), 문성근(한윤식 역), 배종옥(박성연 역)이다. 영화 줄거리는 출판사 직원인 이원상의, 사장인 한윤식에 대한 심리가 변해가는 과정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데, 그 과정은 한마디로 동등한 줄 알았던 상대방이 점점 커지고 자신은 점점 작아지는 붕괴의 과정이다.

영화가 끝난 다음에 이원상이 엔딩 이후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다가 어느 중국 고전에서 읽었던 “사람은 자기보다 재물이 열배 많은 사람은 우습게 여기고, 백배 많은 사람은 두려워하고, 천배 많은 사람에게는 몸을 의탁하려고 한다”라는 구절을 떠올렸다. 이원상의 행동은 그가 느끼는 한윤식과 자신의 거리에 따라 달라질 것인데, 이원상에게 남겨진 힘인 질투는 희망이 아닌 절망의 테두리 안에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면서 일말의 자존감이나 저항의사마저 사라지는, 이러한 붕괴의 과정은 고통스럽다. 하지만 사실 살아가면서 누구나 이러한 과정을 겪게 된다. 또 누구도 죽음이라는 붕괴는 피할 수 없다. 이런 저런 위안으로 붕괴 뒤 절망 속에서도 살아간다. 살아갈 수 있다. 살아가면서, 상대방과의 거리를 확인하는 능력은 어쩌면 힘인가? 제목의 절묘함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그 절묘한 제목이 오리지널이 아님을 알게 된 것은 기형도 시인의 시 ‘질투는 나의 힘’을 만난, 그로부터 이삼년 뒤의 일이다. 그가 1989년 28세로 요절한 직후 발간된 첫 시집이자 유고시집인 ‘잎 속의 검은 잎’에 실려 있는 이 시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영화와 달리 시는 절망만을 말하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 마지막 3행에서 시인은 자신의 절망이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면서, 스스로를 추스른다.

희망과 현실의 격차가 크다고 언제나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지는 않는다는 반전마저 담겨져 있는 것 같다. 기형도 시인이 영원한 청년으로 남아 있고, 그의 시가 오랜 세월 많은 이들의 위안이 되어 온 이유도 바로 이 점에 있지 않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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