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질한 인생들, 서로의 삶에 화해의 손길을 건네다
지질한 인생들, 서로의 삶에 화해의 손길을 건네다
  • 김명지 기자
  • 승인 2012.11.03
  • 호수 137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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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더 복서」, 삶의 고난을 이겨내는 따스한 인간미
▲ 붉은 사자와 셔틀은 처음 만난에서 낯선 서로의 존재를 달가워 하지 않는다.
혜화역 2번 출구로 올라가는 길 양옆엔 각종 공연들의 포스터가 전시돼있다. 그 중 하늘색을 배경으로 단순 하게 쓰인 ‘더 복서’의 포스터도 있다. 화려하게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진 않지만 배경과 노란색을 입은 인물들이 색의 대비를 이루며 잔잔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연극 속 인물들의 만남도 이와 같이 결코 자극적이지 않다. 그러나 특별하다.

공연을 선보이는 학전블루소극장 지하로 내려가 객석에 앉으니 뭔가 이해할 수 없는 무대가 보인다. 우선 맨 앞에 창틀이 놓여있고 그 아래쯤엔 빨간 상자, 그 왼쪽너머엔 철제침대와 서랍장 이 있다. 무대 정중앙이자 가장 뒤편엔 웬 여닫이문이 하나 있다. 창틀과 여닫이문 사이의 거리가 그리 넓지 않아 이게 뭔가 싶다. 여닫이문 위엔 나뭇가지와 나뭇잎 몇 개가 그림자로 비춰져있다. 뒤에 앉은 한 여성 관객이 “저 나뭇가지 어떻게 한 걸까?”하고 동행인에게 묻는다. 나 또한 그것을 생각해보던 차에 조명이 어두워지는가 싶더니 드디어 등장인물 하나가 등장한다.

휠체어를 타고 골골거리는 노인의 모습이 왼쪽에서부터 나타난다. 노환 때문인지 몸을 너무 많이 떨어서 몸을 제대로 가누는 것조차 힘겨워 보인다. 너무 과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왼쪽에서 중앙으로 천천히 휠체어를 이끌던 노인이 중앙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온다. 문을 닫고 들어온 노인을 보니 이제야 그것이 한 방을 보여주고 있음을 깨닫는다. 창문과 여닫이문을 사이에 두고 비치된 빨간 상자와 침대, 수납장은 이 방의 가구인 것이다. 아마도 노인의 생활공간인가 싶다. 그런데 이 노인, 뭔가 이상하다. 벌벌 떨던 몸이 방에 들어오니 떨림을 멈춘다. 동작이 과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괜한 생각은 아니었던 듯, 휠체어 페달은 성가시다는 듯 옆으로 치우고는 노인이 벌떡 일어난다. “휴” 외마디 깊은 한숨을 짓던 노인은 빨간 상자 곁으로 간다. 상자 속을 뒤적대던 노인이 꺼낸 것은 친숙한 초록색 유리병이었다. 그리고는 꼴깍꼴깍 플라스틱컵에 따라 술을 한잔 들이키는 노인이다. 빨간 상자의 용도를 궁금해 하던 것이 본 기자뿐만이 아니었던 듯 관객들 사이에서 ‘아’하고 이해하는 소리가, 노인의 ‘쿨’한 원샷에 잔잔한 웃음소리가 들린다.

잠시 후 껄렁껄렁한 소년이 페인트 도구를 들고 방문을 두들기다가 이내 완력으로 들어온다. 소년은 과장된 욕설들을 내뱉는다. 소년의 이름은 ‘셔틀’이다. 공연을 보기 전에 미리 등장인물들을 살펴봤을 때 확인했던 이름이다. 처음 ‘셔틀’이란 이름을 들었을 때, 이제 우리사회에 공공연한 은어가 된 ‘빵셔틀’이니, ‘가방셔틀’이니 하는 말들이 생각났었다. 다만 이 학생을 불량학생으로 묘사한 표현들이 있어 불량학생이면서 이름은 셔틀인 아이러니함을 느낀 바 있었다. 그런데 이 셔틀, 진짜 셔틀이었다. 자신을 단지 덜 맞고 사는 평화주의자일 뿐이라 소개한다. 그의 말속에 슬픔이 있다.

관객들은 소년의 입에서 비로소 이곳이 영안실 옆 창고 독방임을 알게 된다. 소년은 이곳에 페인트칠을 하러 온 것인데, 사실 이것은 사회봉사 명령에 의한 것이다. 자신을 괴롭히는 불량학생으로 인해 누명을 쓰고 받게 된 벌인 것이다. 그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인지 모르겠으나 어린 학생이 입이 너무 거칠다. 그래서인지 셔틀이 시끄럽게 욕을 할 때면 순간 객석에서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조차 멎는다. 그러나 소년은 발랄함을 잃지 않고 음악에 맞춰 랩을 하고 몸을 들썩인다. 연극에서는 이후로도 중간 중간 이런 랩과 발랄한 몸동작, 비트박스가 등장한다. 이때엔 조명 역시 신난다. 셔틀의 갑갑한 상황을 잠시 잊고 극의 음악적 요소에 동화돼 관객들이 마음에 휴식을 취하길 바란 것인지, 소극장 무대의 분위기 역시 한결 편안해진다.

노인이 귀머거리란 소릴 듣고 온 셔틀은 그를 ‘노땅’이라 부르며 한껏 무시하고는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길 아무렇게나 해댄다. 학교 ‘일진’에 대한 분노, 자신의 억울함, 자신이 좋아하는 편의점 누나에 대한 얘기 등이다. 그러던 중 영 못 봐주겠던지 노인이 드디어 입을 연다. 이에 소스라치게 놀란 셔틀은 말한다. “노땅, 귀머거리 아니었어요?” 노인이 덧붙인다. “쪼다 같은 놈”.

▲ 붉은 사자가 과거 유명한 복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셔틀이 그와 함께 옛날 신문을 보고 있다. 신문기사들은 복서 붉은 사자의 화려한 과거를 회상하게 해주고 있다.
이 장면에서 관객들은 웃는다. 갑자기 입을 연 노인의 ‘쪼다 같다’는 표현 때문인지, 셔틀 못지않게 ‘쪼다 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도 태연한 척 하는 노인의 모습 때문인지 모르겠다. 환자복을 입고 골골대며, 아니 골골대는 척을 하며 “쫓겨나기 싫어서 아픈 척 좀 했다”는 노인은 사실 젊은 시절 복싱 챔피언이었던 ‘붉은 사자’였다. 과거를 이야기하는 붉은 사자와 이를 듣고 있는 셔틀의 뒤 배경으로 각종 경기 영상과 신문 보도 내용이 스크린에 비춰진다. 요란한 음악소리와 함께 한때 ‘잘 나갔던’ 붉은 사자의 행적이 보인다. 그 속에서 17살의 셔틀과, 역시 같은 17살의 나이에 아버지의 회중시계를 훔쳐 집을 떠나온 붉은 사자가 어렴풋이 소통을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전혀 다른 듯 하면서도 닮은 구석이 많다. 누구에게는 많이, 누구에게는 그리 많이 남지 않은 여생을 살아가며 이들이 풀어야할 인생의 과제는 무엇일까. 자신들의 말 그대로 ‘지질한’, ‘쪼다 같은’ 삶의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두 인물들의 운명적인 만남과 서로를 이해해가는 과정이 모범 답안을 들려줄 수 있을 것이다.

사진 제공: 학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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