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E] “예술이 사기라고요?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
[HUE] “예술이 사기라고요?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
  • 류민하 기자
  • 승인 2012.10.12
  • 호수 137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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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을 그려내는 수묵담채화 장인, 화가 최영걸

최영걸 화가의 원동력은 ‘나눔’이다

그의 그림은 꼭 사진 같다. 가까이 다가가야 그림인지를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림임을 확인하는 순간 감동은 찾아온다. ‘이걸 사람이 그렸어?’ 안 그래도 손이 많이 가는 수묵담채화 작업이지만 갈수록 욕심이 더 생겨서 공을 더 들인다는 그는 확실히 미련하지만 보물 같은 화가다.

 

사람이 그려서 잉태된 감동최영걸 화가가 그리는 그림을 서양식 분류로 ‘극사실주의’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설명으로는 전통 산수화에는 기본적으로 섬세한 표현이 수반돼 있다.

“저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전달하는 데에서 의미를 얻어요. 그래서 섬세한 표현에 공을 들이는 것 같아요. 우리가 여행하다가 풍광이 좋은 곳을 발견하면 감동을 받잖아요. 근데 그 풍광이 사진으로 전달될 때는 아무리 이미지가 선명해도 뇌는 ‘이건 사진이구나’ 하고 느껴요. 그림은 어떻게 보면 사진보다 디테일이 덜 표현되는데도  사진보다 감동이 훨씬 더해요. 사람이 직접 그렸다는 걸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내가 풍광을 보고 느끼는 감동을 전통회화 기법을 통해 그려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심지어 그의 그림은 몇 번이고 덧칠해서 수정할 수 있는 유화가 아니라 수묵화다. 화선지에 먹을 이용해서 그리다가 한번 잘못 붓터치를 하면 작품을 버려야 한다. 실제로 그는 몇 개월간 그린 그림을 채색 실수로 버려야 했던 적이 있었다. 이렇게 어렵고 귀하게 그려졌기 때문에 감동이 있을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대학에서 미술을 배우던 시절은 동양추상화가 유행했다. 그의 화풍은 인정받지 못했다. 수재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유명 대학 동양화과에 입학했지만, 교수들로부터 ‘그림에 격이 없다’는 평을 듣기 일쑤였다. 대학 졸업도 그림을 추상화로 고쳐서 간신히 했다.

“저는 체질적으로 추상 표현이 잘 안 맞아요. 어릴 때부터 섬세하게 재현하듯이 그리는 데 관심이 있었어요. 그쪽으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서 계속 그렇게 그렸던 거죠. 왜 이런 쪽을 좋아하게 됐나 스스로 한번 돌아봤는데 전 뭘 했을 때 티가 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추상화보다 이런 세밀한 표현이 일반인들에게 다가오기 쉽거든요. 제 그림을 미술에 대한 식견이 높은 일부뿐 아니라 미술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까지도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입시강사, 화가가 되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14년 동안 고등학교와 미술학원에서 입시 미술을 가르치는 실기 강사로 일했다. 가르치는 데 많은 의미를 느꼈고 심지어 입시강사로서 실적도 나쁘지 않았지만 돌연 강사 일을 그만뒀다.

“입시를 계속하다가 회의를 느꼈어요. 더 하다가는 질식할 것 같은 거에요. 화가들은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작품으로 보여주고 사람들이 열광하든 냉담하든 혼자 다 짊어지면 돼요. 그런데 입시 미술은 학생들이 성적을 잘 받게 해야 하니까 그렇지 않더라고요. 열심히 가르쳐도 본의와 다른 결과가 나와서 여러 사람이 상처를 입는 일도 있고요, 순수하게 가르치는 것뿐 아니라 돈 문제와 항상 묘하게 얽혀있는 것도 싫었고요.”

입시 미술 강사를 그만둔 그는 다른 살길을 찾았다. 하지만 그림 외에 다른 일로 먹고살 재주가 없었다. 선배의 연습실에 2년간 틀어박혀 스스로의 작품을 그리는 연습을 했다. 그러다가 첫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원래 첫 개인전에 모르는 사람들이 와서 그림을 사가는 경우는 드물어요. 보통 첫 개인전은 지인들이 와서 격려하는 의미에서 알음알음 사주는 거죠. 근데 제가 힘이 났던 일은 전혀 모르는 아주머니 한 분이 길을 가다가 전시회에 들어와서 그림을 산 거에요. 단 한 점을 그렇게 팔고 나서 용기가 생겼어요. ‘아, 내가 계속 할 수 있겠구나.’”

그렇게 두 번째, 세 번째 전시회를 열었다. 점점 그의 그림에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늘어났고 갤러리에서도 그에게 연락을 해왔다. 2005년에는 홍콩의 유명 미술 경매 ‘크리스티’에 그림을 출품했다. 그의 그림은 무려 1천 500만 원에 낙찰되는 기염을 토했다. 예상 수준을 훨씬 웃도는 가격이었다.

미련하지만 생명같은 욕심
경매에서 고가에 그림이 낙찰되고 나서는 여기저기서 러브콜이 쏟아졌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그의 그림을 원하고 그는 더 많은 그림을 그려야 했다. 어쩌면 더 빨리 그릴 필요가 있어졌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결코 작업을 서두르지 않는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욕심이 생기거든요. 이전에는 같은 공간에 나뭇잎을 100개 그렸다면 지금은 150개를 그리는 거죠. 조금만 더 하면 나은 표현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까 그림 하나를 완성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요."

조금 더 세밀해졌다고 해서 일반인들이 단박에 변화를 알아채는 것은 아닌데도 그는 집념을 버리지 않았다. 몇 십 년 동안 장맛을 유지하는 음식점 주인의 마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수를 쓴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작업량을 늘리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은 있는데 제 성격엔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사람마다 ‘이 선은 내가 침범하지 않고 지켜야지’하는 고집이 있잖아요. 작가에게 작품의 질을 유지하는 건 생명과 같다고 생각해요. 남들이 볼 땐 바보짓일지 몰라도 그런 데서 오는 쾌감이 있기도 하고요.” 

사진 류민하 기자  rmh719@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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