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빵과 붕어빵
국화빵과 붕어빵
  • 고영희<국문대 프랑스언어문학과> 강사
  • 승인 2012.10.09
  • 호수 137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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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을 돌아가면 국화빵집이 있었다. 국화가 한가득 하얀 접시에 피고, 단팥이 입안을 고이 적시면 생각이 풀풀 피어올랐다. “내가 가을을 먹는구나.” 그 시절 간식거리의 첨단이 내게 준 경이로움이었다. 

그 골목에서 국화빵집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 자리에는 어느새 붕어빵 가판대가 서있다. 입안에서 갯냄새조차 피워내지 못하는 붕어는 더 이상 경이로울 게 없다. 

세월과 함께 사람도 사물도 생각도 변한다. 평면 화면만큼 사람들의 생각도 얇아진다. 큰 건물 자동문은 다가가기만 해도 저절로 열려 내가 대단한 인물이라는 착각에 빠트린다. 현실에서는 죽은 듯 잠잠히 있다가 가상세계에서만 부활하는 사람들도 있다. 스마트 폰은 우리에게 자연으로 눈을 돌릴 기회를 주지 않는다. 특히 학생들은 똑같은 말만 톡톡 두드리다 강의를 홀딱 놓치는 수도 있다. “그러면서 등록금이 비싸다고 하는가!”

그렇다고 변화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친척들에게 부고를 알리려고 하루를 꼬박 걸었던 우리 부모님들의 시절이 있었다. 묵직한 전화도 털털 거리는 자동차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연인들의 편지가 강을 굽이돌고 산을 뛰어넘었다 발신인에게 되돌아갔던 적이 있었다. 인터넷이 없었던 탓이다.

한편 좀 더 나은 삶을 만들기 위해 또렷한 주관을 갖고 변화를 주도하는 예도 있다. 며칠 전에 프랑스에는 에마위스(Emmaus)가 운영하는 중고백화점이 처음으로 생겼다. 우리나라에도 중고 옷가게나 중고 가구점은 존재하지만 중고 물품을 집약해 판매하는 곳은 없다고 본다. 에마위스는 1949년에 프란체스코파 성직자 삐에르(Pierre) 신부님이 설립한 빈민을 구제하기 위한 공동체이다.

이 에마위스 중고백화점에서는 사망한 사람들이나 멀리 떠나야 하는 사람들의 물품을 기증받고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한다. 그릇이나 장신구를 비롯해 가구와 가전제품까지 온갖 품목을 판매하고 남은 수익금은 다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쓰인다.

많은 예술가들이 이 중고백화점 실내장식에 기꺼이 참여해 작은 정원까지 갖춘 쾌적한 공간을 만들었다.

“돈이 없어도 아름다운 공간을 누릴 권리가 있고, 싼 물건도 화려한 매장에 놓일 수 있다”는 그들의 얘기다.
변화는 경이로운 것이거나 식상한 것이거나 혼란스러운 것이거나 아름다운 것일 수 있다. 국화빵에 이어 붕어빵, 그 다음에는 무슨 빵이 나올지 모른다. 형체 없는 아메바 빵이 생길지 흉측한 파충류 빵이 만들어질지 아니면 외계 별 빵이 탄생할지 모른다. 뜬금없는 소리 같지만 겨드랑이 털을 없애는 제모제 대신에, 겨드랑이에 다는 무지개 색 날개 장식이 고안될지도 모른다. 텔레비전 화면은 납작해지다가 지구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릴 수 있으며, 자동문은 홀로그램으로 대체되어 요일마다 변신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변화에도 정신을 잃지 말았으면 좋겠다. 변화를 주도하는 건 정신이니까. 누군가에게 경이로움을 주는 건 훌륭한 일이다. 게다가 변화하고 소중한 가치를 지키는 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특히 강의 시간에 자꾸 고개를 화면으로 수그리는 그대들, “자연이 화면보다 아름다워.” 그러니 고개를 드시오.  누군가를 놀라게 해야지 않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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