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생각하는 갈대’가 되어야 하는 이유
우리가 ‘생각하는 갈대’가 되어야 하는 이유
  • 조주현<과학철학교육위원회> 강사
  • 승인 2012.09.23
  • 호수 137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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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의 길목은 어느새 가을이다. 바야흐로 하늘은 높아지고 말은 살찐다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다. 그런데 왜 하필 천고마비일까. 물론 과학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가을이 되면 시야가 넓어지는 날씨가 많고, 말은 풍부한 곡식을 먹으며 겨울을 대비한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혹시 천고마비가 살찐 말을 타고 가을 수확기에 접어든 중원의 곡식을 빼앗으려는 외적들에 대한 경계와 긴장감에서 비롯됐다는 중국고사의 유래를 알고 나면 놀라운 일이 될까.

‘신체발부(身體髮膚) 수지부모(受之父母) 불감훼상(不敢毁傷) 효지시야(孝之始也)’란 말은 어떤가. 우리의 몸은 부모로부터 받았으니 훼손하거나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이 효도의 출발이라는 뜻이다. 이 화두는 불과 100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삶을 지배하는 힘 있는 전통이었다. 이 전통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행해지고 있는 성형수술은 단연 불효다. 부모로부터 받은 몸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우리 선조들은 그렇게 보았을까. 육체와 정신은 연결되어 있는 전인적 존재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까.

혹시 “새장 속에 갇힌 종달새도 종달새인가”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어떻게 대답할까. 종달새가 비록 새장 속에 갇혀 있다고는 하지만 생물학적으로 보자면 여전히 종달새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좀 더 생각해보자. 새는 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새가 아니겠는가. 창공을 자유자재로 날지 못하는 새를 두고 어떻게 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마찬가지의 질문을 우리 자신들에게 해보자.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는 무엇이 있어야 하는가.

요즈음 우리 대학생들은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 저마다 영어점수를 올리거나 면접 경력을 쌓는 등, 이른바 ‘스펙 쌓기’에 분주하다. 좋은 현상이기는 하나, 과연 좋은 직장의 기준은 무엇일까. 보수만 좋으면 좋은 직장일까. 또 우리 가운데 많은 이들이 인기 있는 남자인 ‘훈남’, 인기 있는 여자인 ‘훈녀’가 되고 싶어 한다. 그런데 훈남, 훈녀의 기준으로 손꼽히는 것이 외모나 경제적 능력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나. 그러다보니 성형수술은 기본이고, 고급 스마트폰이 필수품이 된지도 오래다. 어쨌거나 과학기술의 발전 덕분에 삶의 질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편리하고 풍요로워진 것은 틀림없는데 그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과연 그것에 비례해서 행복해지고 있는 것일까.

러시아의 생리학자, 파블로프의 개 실험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터. 개에게 먹이를 줄 때마다 종소리를 울렸더니 나중에 그 개가 종소리만 들어도 침을 흘렸다는 이른바 ‘조건반사’에 관한 실험이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개에 관한 실험으로만 읽혀지지 않는다. 생각 없이 무턱대고 반응하는 존재는 물론이지만 그런 속성을 이용하는 권력의 주체 역시 모두 인간이 아닌가. 아무리 유복하고 얼짱이라고 할 만큼 잘생긴 꽃미남, 꽃미녀라고 해도 생각 없이 무턱대고 유행을 따르고 시류에 반응하는 존재라면 어떻게 품격 있는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에게 과연 자유는 있는가.

인간은 갈대처럼 연약한 존재지만, 생각하는 갈대다. 이 사실에 공감하는 한양인이 많아진다면, 한양대가 글로벌 100대 대학이 될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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