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 달빛 아래 남산에 울려 퍼지는 풍류
가을밤 달빛 아래 남산에 울려 퍼지는 풍류
  • 강지우 기자
  • 승인 2012.09.22
  • 호수 137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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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다리로 앉아 정가를 마주하는 음악회
▲ 「남산풍류」에서 강숙현 대표가 정가를 노래하고 있다.
몇천 석까지 확보된 큰 공연들이 많은 요즘 소수 관객으로 제한된 공연을 볼 수 있는 기회는 드물다. 「남산풍류」가 그런 귀한 공연이다. 「남산풍류」는 서울 중심의 남산의 한옥마을 내에 있는 ‘서울남산국악당’에서 소수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음악회다. 여느 공연과 달리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없고 연주자들과 관객은 마주 보고 있다. 마이크도 없이 생생한 소리를 그대로 들을 수 있으며 작은 손동작, 몸동작까지 느낄 수 있다. 대공연장에서 하는 공연은 그 분위기에 압도되는데 「남산풍류」는 연주자와 관객이 서로 이야기를 하며 편하게 국악을 체험할 수 있는 공연이다.

「남산풍류」는 공연장이 아닌 ‘국악체험실’에서 펼쳐진다. 신을 벗고 들어가면 스무 명을 위한 다과상이 차려져 있다. 공연에 앞서 차를 마시는 간단한 팁을 알려준다. 관객 중에는 나이가 지긋한 분들도 있고 일본 관광객들, 과제를 위해 체험하러 온 대학생들도 있었다.

총 13회의 공연에서 단 1회 정가 공연을 하게 된 주인공은 국악가인(歌人) 강숙현<풍류단 시가인> 대표다. 정가를 부를 강 대표와 관현악 반주자들이 국악체험실로 들어오고 강 대표가 자신과 연주자들을 소개했다. 가수가 관객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눈을 맞추며 정가와 곡에 대한 소개를 이어갔다. 강 대표가 공연에서 부를 종류는 민속음악인 잡가에 속하는 시창과 정가에 속하는 시조, 가사, 가곡이다.

시창으로는 가장 느린 곡인 「상령산」의 선율에 그녀의 목소리를 입혀 불렀다. 반주의 주선율을 이루는 해금과 노래를 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어우러졌다. 또 한국의 실로폰이라 불리는 ‘양금’의 소리가 맑게 울려 퍼졌다.

시조는 평시조보다 글자 수가 많은 ‘각시조’와 여러 시조를 이어 만든 ‘엮음지름시조’로 나뉜다. 강 대표는 “근대에 만들어진 곡이라 편하게 들을 수 있는 곡”이라고 소개했지만, 정가를 처음 접하는 사람으로선 그리 쉽지 않았다. 다만 시조의 독특한 창법이 판소리보다는 차분하며 정갈한 느낌을 준다. 엮음지름시조 곡인 「푸른산중하에」는 까투리, 승냥이, 토끼 등 동물들이 등장하고 포수가 짐승을 쫓는 이야기인데 내용이 전부는 전달되지 않아도 조금씩 들리는 내용이 재밌다. 장단은 딱딱한 시조와 흥겨운 민요 사이의 느낌이었다.

이어서 부른 주요무형문화재 제41호 가사는 정악과 민속악적 특색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강 대표가 부른 가사는 남녀의 이별을 노래한 「황계사」와 기생의 슬픈 사랑 이야기인 「매화가」이다.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접해본 작품이라 조금은 친숙하고 편하게 들을 수 있었다. 「황계사」는 주로 독창을 하는데 이날은 강 대표가 남창 가곡인인 박문규<한국정가악연구원> 원장과 함께 주고받으며 불러 특별했다. 「매화가」는 경기민요의 느낌이 있어 어깨가 절로 흥겨운 곡이다. 옆에 앉았던 외국인 관광객은 손으로 박자를 맞추기도 하고 어깨를 들썩였다.

정가의 꽃, 가곡은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다. 특히 주인공 강 대표가 여창 가곡인으로 유명하다. 그녀는 “어릴 때 서양 가곡은 잘 불렀는데 전통 가곡을 부르려 하니 처음엔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날 부른 가곡은 「편수대엽」과 「태평가」다. 「편수대엽」은 여창 가곡이며 가장 빠른 노래다. 고음이나 콧소리를 낼 때 그녀만의 말끔하고 청아한 음색을 느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부른 「태평가」는 남녀가 화음을 넣어 부르는 유일한 곡이라 부르는 사람에게도 난도가 있고 듣는이의 입장에서도 그 내용이 쉽게 이해되는 곡은 아니다.

모든 노래가 끝난 후 강 대표는 참석한 정가인들을 소개하고 관객들과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며 끝인사를 건넸다. 보통 공연이 끝나면 연주자들이 인사하고 무대 뒤로 나가는 것과 달리 그녀는 끝까지 관객들과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이날 강 대표는 “소소한 실수도 있지만 조선 시대 풍류방의 모습처럼 독창자만을 위한 음악회가 아니라 함께 즐기는 시간이 돼 기쁘다”고 전했다. 공연을 본 관광객 일본인 모리타 씨는 “정가를 처음 접하게 돼 좋은 기회였다”며 “일본에서도 이와 비슷한 음악이 있다”고 덧붙였다. 또 홍미애<서울시 양천구 44> 씨는 “판소리는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었는데 정가는 새롭고 특별했다”고 소감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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