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소래 漢마당] 소리꾼과 청중은 둘이 아닌 하나!
[韓소래 漢마당] 소리꾼과 청중은 둘이 아닌 하나!
  • 김유진 기자
  • 승인 2012.09.12
  • 호수 137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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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다역 극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된 전통 음악, 판소리
9시간 20분. 소녀 명창 김주리 양이 최연소 최장시간 판소리 완창으로 기네스북에 올린 기록이다. 3분에서 5분 정도 부르는 대중가요에 반해 판소리는 소리꾼이 최소 3시간에서 최대 8시간 정도 노래를 한다. 판소리가 이토록 긴 시간 동안 노래할 수 있는 이유는 판소리의 가사가 바로 서사문학이기 때문이다.
  
판소리 무대를 구성하는 사람은 북을 치는 고수와 노래를 하는 소리꾼 두 명이다. 하지만 판소리의 재료인 서사문학 즉, 이야기에는 등장인물이 여러 명 등장한다. 소리꾼은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역할을 해낸다. 예를 들어 「수궁가」를 노래할 때는 소리꾼이 토끼, 자라, 용왕, 심지어 수궁의 각종 신하들까지 노래해야 한다. 혼자서 여러 역할을 장시간 노래하기 때문에 소리꾼에게는 피를 토해가며 수련하는 득음의 과정이 요구된다. 조주선<음대 국악학과> 교수는 “판소리가 2003년 유네스코에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결정적인 이유는 일인다역 극에 긴 이야기를 노래한다는 독특함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판소리는 흔히 ‘남도의 음악’으로 불린다. 여기서 남도는 한강 이남을 뜻하는 것으로 전라도, 충청도 서부와 경기도 남부에 이르는 넓은 지역을 말한다. 판소리는 섬진강을 중심으로 유파(판소리 전승의 줄기)가 나뉜다. 섬진강을 기준으로 동쪽지역의 소리는 동편제, 서쪽 지역은 서편제로 구분된다.

지역에 따라 말씨가 달라 유파별로 노래의 느낌도 다르다. 전라도의 서남지역은 말을 길고 느리게 하기 때문에 서편제 역시 느릿느릿한 음으로 노래하는 것이 특징이다. 소리꾼들의 삶을 다룬 영화 「서편제」에서 소리꾼들이 진도아리랑을 부르는 장면은 “사라암이이 사알며어는 몇배액녀언을 사아아아나아아아아”라는 기나긴 소리로 시작한다. 이처럼 서편제는 음을 길게 늘어뜨려 애달프고 가녀린 느낌을 자아낸다. 반면 전라도의 동북지역은 말을 짧게 하기 때문에 동편제는 비교적 굵고 짧게 끊는 음을 구사한다.

판소리의 각 유파들은 스승이 제자에게 직접 노래를 전승함으로써 고유의 소리를 잘 보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노래는 전승뿐만 아니라 발전의 과정도 거쳤다. 제자는 스승에게 이어받은 노래에 자기 나름대로 개작을 더했다. 이 행위를 ‘더늠’이라고 부른다. 소리꾼에 의해 더늠의 과정을 거친 곡은 더욱 풍성한 곡이 됐다. 하지만 1962년부터 국가는 판소리를 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 명창들이 고유의 소리를 지켜나가도록 한 것이다. 제자들은 예전처럼 스승의 소리를 개작하지 않고 오로지 똑같은 소리로 모방해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명창들의 노래는 더늠의 과정이 없이 계승됐고 판소리의 가사는 점차 정형화됐다. 조 교수는 “청중들의 호응에 따라 노래를 개작할 수 없어서 판소리의 흥행성이 떨어지고 소리꾼과 청중간의 교류도 줄었다”고 분석했다.

본래 판소리는 ‘판’과 ‘소리’의 합성어로 청중들이 모인 판에서 부르는 노래라는 뜻이다. 극장이 발달하면서 판소리의 공연 장소도 판에서 서양식 무대로 바뀌었다. 이로써 판소리는 무대예술로서의 가치가 높아졌다. 하지만 청중들은 판소리를 더 이상 한판 즐기는 공연이 아니라 딱딱하고 지루한 무대예술로 여기게 됐다. 이종구<음대 작곡과> 교수는 잡지 「음악춘추」와의 인터뷰에서 “무대가 높고 청중과의 거리가 먼 서양식 무대양식의 그릇엔 판소리의 매력을 제대로 담아낼 수 없다”고 말했다. 점점 판을 즐길 수 없게 된 대중들은 판소리를 어렵고도 심오한 예술로 인식하게 됐다.

명창들은 소수가 즐기는 고급예술로 변한 판소리를 대중예술로 바꾸고자 노력했다. 먼저 무대에서 소리꾼과 청중 간의 거리를 좁혔다. 청중들이 소리꾼을 둘러싸고 즐기는 판소리는 멀찍이 떨어져 관람하는 대극장보다는 오히려 소극장 무대가 적합하다. 가까이서 소리꾼과 교감할 수 있는 소극장에서 청중은 절로 흥에 겨워 “얼쑤”하고 추임새를 넣게 된다. 또 청중들의 추임새에 소리꾼은 더 신명이 나 노래를 하게 되고 공연은 지루할 틈이 없다. 모두가 즐거운 판소리의 비결은 바로 소리꾼과 청중의 호흡에 달려있다.
  
도움: 조주선<음대 국악학과> 교수
참고: 도서 「판소리 소리판」
일러스트 출처: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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