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 관능, 여성의 인권을 말하다
치명적 관능, 여성의 인권을 말하다
  • 노영욱 기자
  • 승인 2012.09.08
  • 호수 137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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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클림트의 「유디트」
▲ <구스타브 클림트의 「유디트」>
찬란한 황금빛을 사랑한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그는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오스트리아 화가다. 이정순<생활대 의류학과> 교수는 “클림트는 초기 작품에서 19세기 후반에 등장했던 전형적인 아카데미 양식을 보여줬지만 그 후엔 장식적이고 현란한 양식으로 전통적인 방법에 반기를 들었다”며 “후기 작품에서는 평면적이고 장식적인 방식에 비잔틴 모자이크 양식에서 영감을 받은 금박을 사용해 독자성을 구축했다”고 말했다.

클림트의 작품을 전체적으로 관통하는 키워드는 ‘에로티시즘’이다. 에로티시즘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과 관련된 소재이기에 옛날부터 꾸준히 다뤄져 왔다. 하지만 그는 여성들을 사실적인 누드로 표현하는 것에서 벗어나 음탕하지만 세련되고 우아하며 신비롭게 묘사함으로써 그만의 에로티시즘을 구현했다. 그의 작품 「유디트」는 이런 그의 시각이 반영된 작품이다.

작품 속 주인공 ‘유디트’는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여성이다. 그녀는 이스라엘에 사는 귀족 출신의 미모의 과부로 베툴리아를 침략한 아시리아의 장군 홀로페르네스에게 접근해 그의 목을 베서 조국을 구한 애국 여걸이다. 그래서 그녀를 소재로 한 다른 화가의 작품들은 대부분 정의와 신앙의 승리로 그녀의 영웅적 행동을 강조하거나 적장이 살해되는 순간을 묘사함으로써 나타나는 참혹성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클림트는 달랐다. 클림트의 유디트는 오르가즘을 느끼는 듯 황홀한 표정에 몸을 비틀며 관능적 우월감을 보이는 음탕한 ‘요부’의 모습이다. 그녀의 눈빛은 마약에 취한 듯 몽롱하다. 왼쪽 유방은 그대로 드러나 있고 오른쪽 유방은 비치는 의복을 통해 더욱 요염하다. 오른쪽 하단부에는 그녀의 손에 쥐어진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머리가 보이는데 그녀는 마치 사체애(死體愛) 환자처럼 죽은 적장의 머리를 애무하는 듯한 모습을 취한다. 이 교수는 “클림트의 「유디트」는 팜므파탈의 매력을 과시한다”며 “성적 매력을 과시해 적장을 유혹해야만 하는 숙명적 역할이 이 그림을 돋보이게 한다”고 전했다.

그런데 클림트는 이런 관능적 여성상에 페미니즘적 성격까지 부여했다. 전통사회는 물론 근대사회에 이르기까지 세상은 남성을 위주로 돌아갔다. 남성은 우월하고 여성은 모자란다는 이분법적 사고 아래 여성은 수동적 자아로 취급됐고 여성 인권 운동가들은 요부로 몰렸다. 하지만 클림트는 오히려 여성을 관능의 절정을 달리는 요부로 표현함으로써 관능의 순수한 가치를 인정해 남성 우월주의의 도덕률을 깨고 근원적 존재로서 여성을 인정하고자 했다. 홀로페르네스가 유디트의 관능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듯이 에로티시즘은 거부할 수 없는 힘으로 우리의 운명을 뒤흔든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클림트가 활동하던 당시 유럽에는 자유주의의 물결이 범람하기 시작했고 이는 곧 여성들의 지위 향상을 야기했다”고 전했다. 이런 역사적 상황에서 그는 여성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을 직관적으로 간파했고 이것을 통해 자신을 다른 화가와 차별화했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열린 클림트 전시회에 유독 여성 관람객들이 많았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참고: 논문 「구스타프 클림트 작품에 나타난 팜 파탈 연구」,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의 인물화에 나타난 에로티시즘에 관한 연구」, 도서 「지식의 미술관」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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