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매표소] 변기통에 우리의 모진 인생을 맡겨보자
[대학로 매표소] 변기통에 우리의 모진 인생을 맡겨보자
  • 김명지 기자
  • 승인 2012.09.07
  • 호수 136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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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샘」, 분출의 공간에서 이뤄지는 소통의 기적
톡 톡. 극이 시작되기 전, 소극장 안에는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띄엄띄엄 들리는 물방울 소리는 고요한 화장실의 그것과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무대 위엔 투명한 칸막이가 쳐진 공중화장실이 보인다. 온통 푸른빛 조명이 밝혀진 무대 위에 변기 3대가 나란히 놓여있다. 이런 광경 위로 영사기를 통해 한 영상이 반복돼 비춰진다. 떨어지는 물방울이 튀어 오르는 화면이다. 무대 위는 그야말로 ‘공중화장실’이다.

2012년 대구뮤지컬페스티벌에서 창작뮤지컬 상을 수상한 뮤지컬 「샘」은 원작이 없는 참신한 서사, 독특한 캐릭터와 장치 등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극의 전반을 아우르는 소재는 ‘샘’, 즉 ‘변기’다. 1917년에 다다이즘 미술가 마르셀 뒤샹의 작품 「샘」은 뮤지컬 속 변기 도둑이 간절히 찾는 대상임과 동시에 변비녀, 설사녀, 변기 도둑의 고민에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소재다. 이야기는 변기란 중심 소재와 공중화장실이란 중심 배경에서 시작된다.

극이 시작되면서 신경질적인 여자, 일명 ‘변비녀’가 공중화장실의 한 칸을 차지한 채 큰소리로 엉엉 운다. 이를 듣고 옆 칸의 남자는 놀란다. 여자화장실의 불청객, 남자 변기 도둑이다. 변기 도둑은 오래전 분실된 뒤샹의 「샘」을 찾겠다며 여자화장실에 몰래 침입한 상태다. 이것이 과학적인 조사를 토대로 한 것이라는 그의 말에는 터무니없는 재치와 맹랑한 자신감이 넘친다.

그러나 자신의 주변에 누가 있는 지 신경 쓸 겨를이 없는 변비녀는 변비, 그리고 남자에게 받은 사랑의 상처에 마음이 성하지 않은 상태로 이내 자살을 하겠다며 목을 휴지로 둘러맨다. 옆 칸에서 들리는 소리에 놀란 변기 도둑은 그녀의 자살을 막기 위해 옆 칸의 문을 열어젖히게 된다. 서로 단절된 채 존재하던 그들이 드디어 마주하게 됐다.

“난 「샘」을 찾고 있습니다.” 자신을 ‘아트딜러’라 소개한 이 변기 도둑은 자신이 여자화장실에 들어오게 된 이유를 설명한다. 변기 도둑은 「샘」이 이 세상 어느 화장실에는 있으리란 믿음으로 이를 찾고 있는 것이다. 그가 이 모든 고초를 감수하면서도 「샘」을 찾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변기의 본질은 ‘물’인데, 물은 모든 것을 씻겨주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모든 생명의 원천이다. 샘이 실종된 이후 사람들의 영적 분열 때문에 세상에 각종 사고가 끊이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이어 변기 도둑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접시 깨지는 소리, 비명 소리, 어린 변기 도둑에게 부모의 싸움은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그가 찾은 곳이 바로 화장실이었다. 화장실에서 그는 물고기가 된 자신이 평온한 바다를 누비는 것을 상상하고 갈망하며 잠시나마 안식을 얻는다.

변기 도둑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끝나자 이어 끝없이 먹고 설사를 하는 ‘설사녀’가 등장한다. 남편에게 사랑받으며 간절히 임신을 원하고 있지만 자신의 뚱뚱한 처지를 비관하고 있는 설사녀는 다이어트약을 먹으며 “치질에 걸리더라도 임신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것”이라고 말하는 반면 과식을 끊지 못해 고통을 겪고 있다.

“살쪄도 예쁘다는 남편의 말에 미안해서 배가 고파와요.” 폭풍우 같은 소리와 함께 설사를 마친 그녀는 엉덩이가 변기에 끼어있음을 깨닫고는 경악한다.

사랑받고 싶은 변비녀와 엄마가 되고 싶은 설사녀, 그들은 각각 ‘자기’와 ‘아기’를 외치며 각자의 염원을 드러낸다. 그리고 우연히 그 가운데 서서 이들을 위로해주게 된 변기 도둑도 있다. 공중화장실이란 공동의 공간에서 영영 가능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소통’이 이뤄진 순간이다. 그리고 이 소통은 기적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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