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하는 캠퍼스산책길’을 만들자
‘철학하는 캠퍼스산책길’을 만들자
  • 한대신문
  • 승인 2012.09.02
  • 호수 1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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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것은 생각하는 것이고 철학하는 것이다. 레베카 솔닛의 ‘걷기의 역사’에는 장 자크 루소의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루소) 걸을 때만 명상에 잠길 수 있다. 걸음을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 나의 마음은 언제나 나의 다리와 함께 작동한다.” 철학자 헤겔 역시 이델베르트의 피로소펜베크를 걸으면서 생각했고, 칸트는 매일 괴니히스베르크의 피로소펜담을 산책하는 것이 철학하는 방법이었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학파는 산책하면서 강의를 했다는 것에서 유래해 걸으면서 사유하는 소요학파(逍遙學派)라고 불리기도 한다.

한편 걷는 것은 지적인 쉼이다. 1998년 뇌 연구가인 마커스 라이클은 ‘디폴트 네트워크’란 이론을 제시한다. 우리 뇌는 일을 많이 할 때 밖으로부터의 자극이 많아져 오히려 받아들이는 작업만 한다는 것이다. 일이 감소할 때 들어온 정보를 적극적으로 조직하고 네트워크하면서 뇌의 활동이 활발해 진다고 한다. 창의적 아이디어가 연구실을 벗어나 한숨 돌리고 있을 때 만들어진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걷는 것은 바로 그런 쉼을 제공해주는 최적의 방법이다.

우리도 걷는 것이 유행하고 있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벤치마킹해 제주에 올레길이 만들어졌고 매년 백만 명 이상이 걷고 있다. 서울의 성곽주변 둘레길, 전북의 마실길, 동해안의 해파랑길 등 전국에 걷는 길이 조성되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조용히 걸으면서 정리하는 명상 여행 또는 웰빙 여행을 하는 추세다. 뭔가 만들어 내고 생산해내는 것에 급급했던 생활에서 벗어나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정리하고자 하는 것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학은 철학하고 사색하는 방법을 교육하는 곳이다. 하지만 우리 대학은 사색할 만한 곳이 별로 없다. 내부는 산업사회의 효율적 공간 구성과 경쟁적 학습 환경에 맞춰져 정교하게 설계됐다. 건물 밖 빈틈이 보이던 잔디밭과 조그마한 공원들은 또 다른 건물들로 채워지고 있다. 학생들 특히 대학원생들은 하루 중 대부분을 학교에서 보낸다. 교수들도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강의하고 연구하고 식사도 한다. 대학캠퍼스는 정량적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효율적 구조를 제공하고 있다. 그렇지만 정작 대학에서 사색을 하거나 창의적 휴식을 할 수 있는 공간은 부족하다.

잠시 쉬며 하늘을 바라보거나 걸으며 명상하고 대화하고 아이디어를 교환할 수 있는 사색의 길이 필요하다. 창의적 연구와 깊은 철학이 나오기 위해서는 그럴 환경을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이제라도 캠퍼스에 철학하는 산책길을 만드는 것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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