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섬을 구원해주소서
이 섬을 구원해주소서
  • 주선민 수습기자
  • 승인 2012.05.20
  • 호수 136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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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5월 28일, 제주도 신축교난 발생
지금 제주도민들은 종교란 이름으로 둘로 나뉘어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우호적이던 천주교도들과 일반 도민들이 서로를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동족 간의 살육이 진행되고 있는 이 땅에서, 천주교를 전파하러 온 선교사인 나는 큰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 다수의 제주도민들이 제주 신축교난으로 인해 희생당했다.
여느 내륙 지방에서와 같이 제주도에서도 민란이 많았다. 하지만 민란이 이번처럼 규모가 크거나 외래 종교와의 분쟁으로 인한 것은 처음이다. 도민들의 분노가 이렇게까지 커지게 된 데는 우리 천주교도들의 옳지 못한 행동 때문인 듯하다.

천주교의 전파는 그 시작부터 재앙의 씨앗을 가지고 있었다. 천주교가 제주도에 처음 전파되기 시작한 1899년, 프랑스 신부는 왕에게 받은 ‘여아대’, 말하자면 국왕처럼 대우받을 수 있는 신표를 지니고 다녔다. 이 ‘여아대’는 프랑스 신부에게 완전한 치외법권과 영사재판권을 제공했다. 그런데 문제는 천주교도인 조선인 누구에게도 적용 가능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천주교가 전파하고자 하는 ‘평등과 사랑의 복음’에 감명을 받은 제주도민들 외에도 특권을 누리고자 하는 불순한 마음을 지닌 자들 다수가 천주교로 개종했다. 그 후 그들은 천주교의 이름 아래 여러 횡포를 부렸다.

하지만 그들이 일으킨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얼마 전 대한제국 정부에서 황실 재정을 채우기 위해 봉세관, 즉 세금을 징수하는 관리를 각 지방 관청에 파견했다. 이에 불순한 천주교도들이 봉세관의 손발이 되기를 자처해 도민들을 수탈하는 일에 앞장섰다.

내 동료 선교사들의 종교 전파 태도 역시 도민들의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대다수의 선교사들이 제주도 고유의 샤머니즘을 ‘사탄’으로 규정했으며 토착 신앙을 믿는 도민들을 우매하다고 비하하기까지 한 것이다. 나를 비롯한 몇 명의 선교사들이 이를 지적했으나 그들은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오히려 마을의 신당과 제단을 부수고 마을의 제사가 진행되는 것을 방해했다.

결국 이 모든 상황들은 천주교도들과 도민들 사이에 돌이킬 수 없는 감정의 골을 만들었다. 도민들은 ‘반천주교 세력’을 조성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지금과 같이 민란이 악화된 것 역시 천주교 측에서 원인을 제공했다고 본다. 지난 5월, 분노한 도민들은 천주교의 여러 폐단들을 지적하고자 ‘이재수’라는 인물을 필두로 제주성으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천주교도들은 도민들에게 사과를 하기는커녕 무기를 장악하고 무차별적으로 공격해 다수의 사상자를 냈다. 이는 결국 양 측의 끝없는 살육전으로 이어졌다.

천주교 세력 내에서도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한 신부가 사태 수습을 위해 프랑스 함대에 도움을 요청한 상태이고 곧 정부에서도 관리를 파견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이 제주도에 왔을 땐 이미 늦을 것이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더욱이 그 죽음은 함께 이 섬을 일궜던 내 이웃의 손에 의한 죽음이다.

주님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이렇게 수많은 죽음들이 따라야만 할까. 과연 지금 제주도의 모습이 주님 보시기에 만족스러우실까. 나는 이 질문에 선뜻 답하기 어렵다. 부디 이 민란이 잘 마무리 돼 제주도민들의 마음에 남았을 크나큰 상처들이 아물길 바랄 뿐이다.

주님, 부디 이 섬을 불쌍히 여기시어 피의 싸움을 종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참고: 논문 「1901년 제주민란에 나타난 교폐와 ‘물고자’」
사진출처: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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