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것이며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닌 한대신문을 위해
모두의 것이며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닌 한대신문을 위해
  • 김명지 기자
  • 승인 2012.05.12
  • 호수 136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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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생의 ‘하나도 어렵지 않은’ 산수 얘기를 한번 꺼내보려 한다. 만약 x+y+z=A라는 식이 있다고 하자. 미지수 A를 구하기 위해서는 x와 y와 z 모두를 알아야 한다. 어느 하나가 빠져서는 미지수 A를 알 수 없다. 적어도 내 짧은 수학적 상식 안에서는 그렇다. 최소한 x와 y와 z가 A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인 한은 말이다.

며칠 전 취재를 하던 우리신문 기자가 내게 전화를 걸었다. 지난 호 기사 중 하나를 너무 ‘불리하게’ 여겨 불만을 표한 취재원을 위해 후속기사를 준비하던 기자였다. 그러나 그 취재원은 ‘정정기사’가 아니라 ‘후속기사’란 점이 탐탁치 않다며 잡혀있던 인터뷰 일정을 취소했다. 우리가 판단하기에 그 기사는 부족함은 있었을지언정 잘못된 내용은 없었기에 ‘정정’보다는 ‘후속’이 적절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취재원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 같았다. 그는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며 담당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럼 저 말고 다른 측의 얘기를 듣고 쓰면 될 거 아니에요.” 그럴 순 없었다. 해당 기사 아이템은 이렇게 주중에 사장됐다.

어떤 기사에 대해서 불쾌한 마음을 갖는 취재원을 이해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아이템이 사장되는 것도 나쁜 일만은 아니다. 보다 발전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이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말처럼, 한 쪽의 이야기만 듣고 기사를 쓸 수는 없다. 앞서 설명했던 미지수식에서와 같은 원리다. 이 식에서 미지수 A를 구하기 위해서는 x와 y와 z의 값을 알아야만 한다. 기사도 이와 같다. 하나의 기사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이 기사와 관련이 있는 요소, 즉 미지의 변수 x, y, z의 이야기를 듣고 알아내야 한다.

간혹 이 미지수를 고려치 않는 경우가 있긴 하다. 첫째로 기자가 인터뷰 컨택을 성사시키지 못하거나 미지수 x, y, z 중 일부만 기사에 영향을 미칠 때가 그것이다. 전자는 명백히 기자 개인의 잘못이며 지탄받을 만한 것이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엔 얼핏 잘못된 것으로 오해를 사기 십상이나 따지고 보면 문제될 것은 없는 사례다.

결국 미지수 A를 이루는 x, y, z가 나타내고 싶었던 것은 학내 3주체인 교수, 학생, 학교(교직원)다. 이는 한대신문을 비롯한 학내 중앙언론기관의 공통된 기치다. 이를 잘 지키기 위해서, 그러니까 (물론 사안마다 다르지만) 3주체의 소통을 위해 기본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앞서 취재원이 불쾌감을 드러내며 지적했던 ‘그것’이 아닌 것이다.

새삼스레 이런 말을 꺼내는 것이 우스울 수 있다. 그러나 풀이 죽어 통화하는 기자와 대화를 나누며 우리는 한편으로 느낀 것이 있었다. 미지수 A를 알기 위해 A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 x, y, z를 알아내는 것은 어느샌가 자연스러운 의무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부정당했을 때의 텁텁한 마음까지도 말이다. 한대신문이 이를 ‘언제나 항상’ 잘 지켜온 것은 아니었다. 이에 대해 많은 불만을 갖고 있는 독자분들 또한 있을 것이다.

개교기념일이다. 많은 분들이 한양의 미래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그 한양의 미래 속에 창간 53주년을 맞은 한대신문의 미래 또한 있을 것이다. 그 무게를 생각하면 학내 언론으로서 분명히 지켜가야 할 원칙에 있어서 한대신문이 때때로 소홀하진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해본다. 걱정도 이어진다. 지금의 과분한 이름에 부끄럽지 않을 날은 언제일지, 요원해보이는 그날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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