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양서(「다윈지능」) 한 권의 독서를 권하며
또, 양서(「다윈지능」) 한 권의 독서를 권하며
  • 한대신문
  • 승인 2012.04.08
  • 호수 1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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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문한 탓이리라. 오래전부터 최재천 교수는 통섭을 주장해왔는데, 최근에 그의 TV 강의와 「다윈지능」이란 책을 읽어 보고서야 비로소 진화생물학의 법학적 함의를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생태계의 안정(stability)은 복잡성(complexity)과 다양성(diversity)에 기초해 달성된다고 한다. 예를 들면, 조그만 연못에서 한두 종류의 물고기와 한두 종류의 수초로 생태계가 단순하고 단출하게 구성되어 있으면 특정 종에 치명적인 질병이 발생했을 경우 그 생태계가 거의 초토화돼 재생이 불가능하게 된다. 반대로 매우 다양한 종으로 복잡한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을 경우에는 일부 종은 질병으로 사라질 지라도 그 빈자리를 재빨리 다른 종에 의해 채울 수 있어 그 생태계는 항상 균형 상태를 유지해 안정화된다고 한다. 학문을 하는 본인으로서는 항상 한두 가지 기본원리로서 모든 연구대상이 설명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마치 구도자와 같이 끊임없이 그 기본원리를 탐구해 왔다. 간혹 A상황에서 매우 유용한 원리도 B상황에서는 불완전하면 속상해하고 무언가 나만의 필살기를 찾듯이 만능 기본원리를 찾아 헤매어 왔다. 생각해 보면, 한두 가지 기본원리로 복잡한 인간사를 전부 설명할 수 없을 것임에도 너무 단순한 매력을 추구했던 잘못이 있었다. 무엇이든 흑백논리화되는 순간 복잡성과 다양성을 잃고 불안정한 변화의 단초를 열게 되는 것이다. 법적 가치의 중심에 있는 정의와 같이 매우 추상적인 개념에 대한 해석이 무수히 존재하는 이유를 이제는 좀 이해할 만하고, 인내할 만하다.

좀 더 충격적인 시사점은 상속에 있다. 자녀를 양육해 보면서 깨닫게 되는 것이지만 자질과 능력이 천차만별이어서 자신이 일생동안 일군 재산과 사업을 계승시키기 곤란한 자녀들이 부모들의 눈에는 보인다. 그런데도 부모들은 기를 쓰고 자기 자녀들에게 자신의 뒤를 물려주고파 한다.

위 책자에서는 유전자가 자기복제를 위하여 인간이라는 개체를 만들었고 유전자에 아로새겨진 본능은 자녀들을 성인개체로 성장시켜 다시 대를 잇게 함으로써 후세에 유전자가 더 쉽게 전해지도록 하는 자연적 섭리의 결과물이라고 설명한다. 자녀개체 성장의 물적기초인 재산의 상속을 소위 혈연위주로 이어주겠다는 것은 본능적 수준의 욕구라는 것이다. 이런 욕구를 억압하는 제도를 도입하게 되면 인간은 이를 회피하고자 많은 투자(circumvention costs)를 하게 되거나 사망 즈음에 상속불가한 재산을 허비하거나 더 이상 축적하기를 포기(depletion costs)하게 된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상속을 제한해 자산이 좀 더 가치 있는 용도로 흘러가게 함으로써 달성할 수 있는 편익(benefit)과 위와 같은 각종 비용(cost)을 비교해 사회적 후생을 극대화하는 상속제도를 설계하는 것이 바람직하겠다는 아이디어를 제공해 준다.

결국, 법학과는 아무 상관이 없을 것 같았던 생물학적 연구를 잘 이해하게 되면서 오랫동안 품었던 많은 의문들이 해결되니 학제간의 소통을 주장하고 있는 최재천 교수와 위 책은 내 연구의 지평을 넓혀 주는 소중한 지식의 보고가 된 셈이다. 매우 쉽게 쓰여 있어 한번 읽어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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