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반안수예
고미반안수예
  • 한대신문
  • 승인 2006.03.12
  • 호수 12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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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래 옥 <사범대·국어교육> 명예교수
나는 평생 말로 밥 먹고 산다. 나는  전공이 국어국문학인데다가 국어교육이니까 더욱 말로써 인격을 지키고 수입을 올리고 출세를 하고, 영향을 주고 받는 터라 말과 뗄래야 뗄 수가 없다. 그래, 말을 잘해야 하는데, 그러면 말을 잘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첫째로 말이 씨가 된다는 것을 알자.

말 하면 그대로 된다는 말이다. “입살 보살(菩薩)”이라고 희게 말하면 희어지고, 검게 말하면 검어진다. 부정보다 긍정, 원망보다 감사를 말하여야 한다. 안된다고 말하면 실제로 안되고, 말로 된다고 하면 실제로 된다.

우리가 가게에 가서 “안성라면 없지요? 볼펜 없지요? 칫솔 없지요?”라고 흔히 말하는데 이런 말은 그 가게 주인을 모욕하는 말이다. 없다고 지레 말하고 왜 사러 오는가 말이다. “치약 있습니까? 우유주세요.”하여야 한다. 누가 나보고 “최선생 돈 만원 없지? 있으면 빌려 줘.” 이런 말을 하는 사람에게는 돈이 있어도 안 빌려 준다. 나를 어찌 보고 돈 만원도 없다고 단정을 하고 빌려달라는가 말이다. 우리 “없지요?”라는 말을 쓰지 말자.

둘째로 말이 복을 불러오고 차기도 한다는 것을 알자.

내가 그 사람이 꼴 “보기 싫다”고 하면 우리 어머니는 나를 혼을 냈다. “보기 싫다”는 말은 “복(福)이 싫다.”가 되어서 복을 차내던지는 불행을 자초한 말이 된다는 잠언(箴言)이요 훈계(訓戒)였다.

상대를 위해 주는 말, 위로하는 말, 격려하는 말, 덕을 세우는 말을 써도 부족한 시간인데 어찌 악담(惡談), 저주(咀呪), 비난(非難), 비평(批評), 시비(是非)를 애써 하리요? 그래서 이 자리에서 나도 복이 있고 남도 복이 있는 말로 “고미반안수예”를 제안한다.

우리 노래한 번 불러보자. 제주도 관련 노래로 <살짜기 살짜기 살짜기 옵서예->가 있는데, 그 다음에 <살짜기 살짜기 고미반안수예 ->를 불러 보자. 고미반안수예라니? 무슨 말인가?

고, 고맙습니다/ 미, 미안합니다/ 반, 반갑습니다/ 안, 안녕하세요?/ 수, 수고하십니다/ 예, 예, 그렇습니다. 예, 참 예쁘십니다...인데 이 고마반안수예를 하고 뺨을 얻어맞은 적은 한번도 없다. 출세는 하였을망정!

외국어를 배울 때 맨 먼저 배운 말이 이 고미반안수예가 아닌가? 무심코 나온 외국말도 이것이 아니던가? 외국인이 우리말을 처음 배워서 쓰는 말도 이것이다. 실로 귀한 말이다.

말 잘하고 징역가랴? 안간다. 말 한 마디 잘 하면 천 냥 빚도 갚는다. 말 한 마디에 천금이 오르내린다. 혀 밑에 도끼 들었다. 혀 밑에 죽을 말이 있다. 말을 잘하면 재앙(災殃)을 만나니까 조심할 일이다. 날카로운 칼로 사람 하나를 해치지만 나쁜 말 한 마디, 험한 혀 한번 놀림은 수백 명을 해칠 수 있다.

이것을 보면 말은 인격이요 그 사람 몸과 마음의 표현이다.
미국 산불조심 구호에 “나무 한 그루는 성냥개비 천개를 만들고, 성냥개비 하나는 나무 천그루를 태운다”고 하는데, 말에 적용을 하면 “한 마디 좋은 말은 천 사람을 살리고 한마디 궂은 말은 천 명을 해친다”고 하겠다.

셋째로 일구이언(一口二言), 거짓말은 자기 손해라는 것을 알자.

불교에서는 거짓말을 영설(兩舌), 곧 한 입에 이 말을 하는 혀와 저 말을 하는 혀, 곧 둘이 있다고 한다. 양설은 보통 사람이 수구(守口)를 못하여서 인격에 파탄이 오고, 관리라면 신용이 떨어지고 불신임이라서 관직에서 쫓겨나고, 직장인이라면 그 자리가 위태위태하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이른바 고관대작이라는 사람이 어제 한 말 다르고 오늘 하는 말 다르니 내일 할 말을 어찌 준신(遵信)하겠는가? 성경에 혀를 길들이기가 어렵다고 하는데, 그래도 대학생이라면 장차 21세기 국내외의 지도자로서 길들여야 한다.
끝으로 아름다운 말을 써야 한다.

무례한 막말, 위아래 모르고 반말, 정말 못들어줄 쌍말, 말을 온전히 못 끝내는 반토막말, 예컨대 “갔습니다”를  “가씀...” 하고 “니다”라는 뒷말을 우물무루 생략인듯, 기운 떨어진듯 하지 말아라.

위 네 가지 말과 인격을 읽다가 보면 내가 아는 누구 이야기라고 하겠지만 사실은 당신 이야기가 아닌가? 이 글을 쓰는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어느 유명한 대학총장이 수십년 전 신입생에게 “무릇 혀끝과 손끝과 살끝, 곧 세 끝을 조심하라”라고 하였다는데 나는 우선 혀끝을 조심하라고 웅변을 한다. 그리고 고미반안수예를 하루 내내 말해보자고 사정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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