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리그, 더 이상은 그만
그들만의 리그, 더 이상은 그만
  • 김명지 기자
  • 승인 2012.03.31
  • 호수 136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누군가 내게 내 몸집만한 투표함을 들고 갈 것을 요구했다. 나는 그 투표함을 억지로 들고 가다가 끝이 보이지 않게 막막한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동시에 다리를 떨며 부르르 깨니 졸음이 달아났다. “강의실이 아니라 다행이다.” 장난스러운 안도와 함께 꿈은 날아가고 가슴은 다시 답답해졌다. 선거가 진행된 지난 시간 동안 많은 학생들이 이와 비슷한 마음이었으리라. 선거 유세와 공청회를 비롯해 선본의 해체와 개별 단대의 반발까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한대신문 역시 선거 기간 동안 깊은 고민을 했다. SNS를 통해 ‘실시간 소식’을 전하려 했으나 그 때문에 한 측의 입장이 먼저 게시되며 ‘편파성’의 오명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모든 과정에 대해 쉽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마음 편히 현 사태에 대해 판단할 수도 없었다. 다만 완성된 기사가 아닌 실시간 전달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싶었던 것뿐이다. 자의적 판단으로 인한 펜놀림만큼 기자에게 무섭고 두려운 것이 또 있을까.

신세한탄은 그만하고 우선은 선거 기간 동안 고생한 모든 이들에게 격려, 또는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그러나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할 것들이 남아있다. 어느 선본에도 속하지 않은 학우의 입장에서 이번 선거는 ‘그들만의 리그’였다. 선거 과정 중 여러 큰 문제들이 생겨 학우들의 관심이 커진 감이 있음에도, 나는 이 일련의 과정을 ‘그들만의 리그’라고 평가해본다. 온라인상으로 의견 제시가 활발히 이뤄진 면도 없지 않으나 정작 오프라인에선 대부분의 사람들이 총학 선거에 무심했다. 당장 앞에 놓인 일들에만 집중하기 바빴다. 양측 선본, 중선관위, 각 단대가 입장을 표명한 대자보 앞을 무심코 지나치는 사람들의 발길은 바빴다.

올해만의 문제는 아니다. “언제나 그랬듯이”라며 그저 그런 일로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국가의 대사를 정하는 총선과 대선마저 ‘그들만의 리그’라 칭해지는 상황에 학내 총학생회 선거가 ‘그들만의 리그’가 되는 게 뭐 그리 대단한 문제까지 되겠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양대생’으로서의 자부심과 지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이번 선거에 대한 아쉬움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처럼 학우들의 무관심이 우선적 원인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선거가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가는 데에는 중선관위와 선본들의 지속되는 갈등도 중요한 몫을 했다. 고등학교 사회문화 교과에 등장하는 ‘갈등론’은 갈등을 사회 발전의 원천으로 여긴다고 했다. 그러나 그 말이 항상 옳은 것 같지만은 않다. 선본과 선본, 중선관위와 선본의 갈등은 이제 막 시작한 선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학생들의 ‘구미’를 떨어뜨리기 충분했다. 한 지인은 내게 이렇게도 말했다. “더러워서 투표 안하고 만다.”

작년부터 이어진 사실상의 ‘선거 파행’으로 고생한 마음들이 어디 한둘이랴. 그러나 결국 그렇게 해서 얻어진 결과가 지난 2주간의 모습이었다면, 실망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고심 끝에 개정했다는 선거세칙도 이런 갈등을 막진 못했다. 물론 터져 나오는 갈등을 막는 것이 절대 능사는 아니다. 그러나 갈등의 원인, 결국은 하나다.

그들만의 리그, 더 이상은 안 된다. 후보와 선본들이여, 보다 솔직해지자. 그리고 학생이자 한양의 권리자들이여, 다시 한 번 잠을 깨자. 그 솔직함과 깨우침에 학생사회에 대한 답이 있을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