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찍는 것을 허락하는 건 내 가슴이다”
“사진찍는 것을 허락하는 건 내 가슴이다”
  • 김유진 기자
  • 승인 2012.03.31
  • 호수 136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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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신미식
‘마다가스카르’ 이름 따 카페 차려
“사진은 감동이다”
지금처럼 쭉 살아가고파

“얼마 안 됐어. 요즘에 쉰이면 젊은 거지.” 가죽 재킷에 딱 달라붙는 바지, 부츠와 캡 모자로 마무리 한 사진작가 신미식의 모습은 영락없는 2~30대 청년이었다. 기자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니까 그런 게 아니냐”고 묻자 “나 같은 경우엔 책을 쓰고 사진을 전시하니까 아무래도 다르겠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양손은 주머니에, 엉덩이는 의자 끝에 걸치고 무심한 듯 툭 내뱉는 그의 말투를 듣고 녹록지 않은 인터뷰가 될 것임을 예감했다. 헤어지는 순간까지 이어질 답변이 눈에 훤히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격식 없는 태도 속에 자유분방하지만 깊이 있는 생각이 숨어 있다는 걸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그가 걸어온 길이 이를 설명해주고 있었다.

커피 한 잔이 전해주는 마다가스카르
인터뷰는 청파동에 있는 ‘마다가스카 카페’에서 진행됐다. 그가 이곳을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에게 작품전시의 기회를 제공할 겸 갤러리 카페로 꾸민 것이 벌써 6년 전이다. 카페 안에 전시돼 있는 사진과 그가 사용하던 가방, 레코드판 등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풍긴다.

“우리 카페에 작품을 공개하는 작가들은 주로 한 번도 전시를 안 해본 친구들이야. 여기가 처음인 경우가 대부분이지. 기회를 서로 나누는 거야. 도움을 주면 나도 좋으니까.”

사진 인화부터 액자 맞추는 일까지 그의 손을 거치지 않는 것이 없다. 직접 꾸민 카페라 공간을 활용하기도 편하다. 손님들은 이곳에 차 한 잔 마시러 왔다가 자연스럽게 사진도 구경하고 간다.

‘마다가스카르’는 아프리카 남동쪽에 있는 작은 섬나라다. 우리에겐 애니메이션 「마다가스카」로 친숙해진 이곳이 그에겐 제2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 '마다가스카 카페'는 그가 쓰던 카메라, 직접 집필한 책 등으로 꾸며져 있다.
“7년 전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갔어. 처음 방문한 건데 전혀 낯설지가 않더라고. 너무 친근하게 다가왔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내 어린 시절 같아서 그랬던 거 같아.”

아낙네들이 빨래터에 가고 그 뒤를 따라가는 꼬마. 그가 어릴 적 살던 시골의 풍경이었다. 그는 ‘이곳이라면 내 남은 생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느꼈던 그 감정은 지금도 변하지 않고 진한 그리움으로 남았다. 마다가스카르를 제일 먼저 방문해 아프리카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갖게 된 건 행운이었다.

“마다가스카르의 아이들은 너무나 아름다운 눈을 가졌어. 그 눈빛으로 나를 볼 때면 숨이 막힐 정도로 행복해져.”

자칫 세상에 등장하지 못할 뻔 한 아이들은 그의 사진 속에서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다. 그들의 맑은 눈망울이 수천 가지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듯 하다. 그가 왜 마다가스카르를 사랑하는지 알 것 같다.

사진으로 사람 바라보기
서른 살에 처음 카메라를 장만하면서 사진이 직업이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월급보다 비싼 카메라를 장만하고는 무엇을 찍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여행을 떠났다. 그렇게 이십여 년 동안 그의 카메라를 거쳐 간 무수히 많은 필름과 피사체들은 지금의 사진을 만드는 원동력이 됐다.

“비행기값 벌어서 떠나고 다시 돌아와서 돈을 버는 식이었지. 여행 사진가를 가장 동경해왔는데 어느새 내가 여행을 하면서 사진을 찍고 있더라고. 카메라를 들고 있을 때 가장 행복했어. 내가 만난 사람들과 아름다운 풍광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알게 됐지.”

사진 속 모든 피사체는 그와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잊지 못할 친구들이다. 친구로 다가가 찍은 사진들은 그도, 보는 사람의 마음도 어루만진다. 그는 감동이란 피사체에 먼저 다가가려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믿는다.

“집에 아기와 아빠가 있다고 생각해봐. 아빠가 아기 사진을 찍는다고 해서 아기가 거부감을 느끼나? 나를 해치지 않을 거란 아빠에 대한 믿음이 아기를 안심시켜주잖아. 그 정도는 안 되더라도 피사체에게 나란 존재가 경계 대상이 아닐 때까지 시간을 들여야 해.”

그렇게 찍은 사진에는 어떠한 치장도 드러나지 않는다. 멋진 단어와 세련된 문장으로 이뤄진 글보다 소박하지만 따뜻한 글이 긴 여운을 주는 법이다. 그의 사진은 후자를 닮았다. “사진을 찍는 것은 카메라지만 그것을 허락한 것은 내 가슴”이라는 그가 전하는 잔잔한 여운이다.

만족하는 삶
“사진은 만들어 내는 게 아니라 있는 걸 그대로 찍어내는 작업이기 때문에 노력한 만큼 나오는 거야. 내가 가는 곳에만 무지개가 뜨겠어? 남들보다 많이  걸었기 때문에 찍을 수 있는 거지.”

그는 사진 찍는 사람의 첫 번째 태도는 공부를 많이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양한 작품을 보고 익히는 것이 사진 공부다. 그는 “그 과정에서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오고 ‘나도 저렇게 찍어봐야지’란 생각을 하게 된다”며 “그렇지 않으면 좋은 장면을 목격해도 그게 좋다는 걸 못 느낀다”고 말했다.

조용조용해 딱히 튀지 않던 중학생 소년은 고등학교에 올라가자 글쓰기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졸업할 때까지 백일장에서 6번의 상을 탔다. 모든 사람들은 그 소년이 국문과를 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곳은 소년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고 결국 디자인과에 진학했다. 미술대회에서도 종종 상을 받곤 했던 실력이 빛을 발한 것이다.

“디자인과에 가면 예쁜 여자애들이 많다고 하더라고(웃음). 사진은 사람들한테 편하게 어필해야 하는데 이건 구도에서 나오거든. 감성적인 면이나 공간, 여백의 미를 활용하는 부분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덕을 보고 있는 거 같아.”

그의 대학시절을 물어봤더니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2학년 때는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해서 차석을 했어. 집안이 어려워 장학금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했거든. 그러다가 총학생회에 들어가고 나서 공부를 안 하기 시작했지. 데모도 많이 하고. 그때는 그게 삶인 줄 알았으니까.”

지금도 후회는 없다. 그런 시간들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대학에 특강을 나가면 그는 “열심히 공부하던지, 잘 놀던지 둘 중에 하나는 하라”고 말한다.

“공부도 못하는데 놀지도 못하면 병신이야. 공부도 시원치 않은 애가 놀지도 못하면 뭐야 그게. 그럼 친구라도 많이 사귀던가. 그렇지 못 한 애들은 별 볼일 없는 거 같아.”

마지막으로 앞으로 그의 계획에 대해 물었다.

“지금처럼 쭉 살아가는 거야. 지금이 제일 행복하기 때문에 더 큰 욕심은 없어. 사진가로서 내가 우리나라 최고도 아니고 최고가 될 마음도 없고. 지금이 제일 편하고 적당해. 더 하면 과하지.”

사진 류민하 기자
일러스트 출처: 아이클릭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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