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술 창고를 열었다
그의 술 창고를 열었다
  • 김유진 기자
  • 승인 2012.03.19
  • 호수 136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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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마다 익어가는 각자의 삶, 정헌배<중앙대 경영학과> 교수

술 담그는 교수 정헌배
“왜 우린 세계적인 전통술 없나”
직접 회사 차려 인삼주 빚어
올바른 술 문화도 정착시키고파

▲ 정헌배<중앙대 경영학과> 교수가 평소에 잘 공개하지 않는다는 지하 숙성실에서 술독을 들어보이고 있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춤과 노래 그리고 술을 사랑해왔다. 손님이 집에 왔을 때 중국은 요리, 일본은 차를 대접했지만 우리는 항상 술상을 봐왔다. 식탁에 오르는 반찬 대부분이 그대로 안주로 쓰일 수 있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하지만 정작 세계에 자랑할 만한 우리 술은 찾기 어렵다. 정헌배<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반만년 역사와 문화민족임을 자부하는 우리나라가 제대로 된 명품 전통주 하나 없이 남의 나라 술만 찾는 것이 안타까웠다”며 지난 2003년 전통인삼주 제조 회사 ‘정헌배인삼주가’를 창업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그는 우리 술의 세계화를 위해 전통주 복원에 앞장서고 있다.

흐르는 시간 속에 삶이 익어간다
건물에 들어서니 누룩 익는 냄새와 술이 발효되는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마시지 않아도 이미 취한 것 같다. 그의 고객들이 주문한 술이 지하 숙성실에서 익어가는 냄새다. 그는 우리 인삼, 우리 물, 우리 쌀만을 사용해 과학화된 전통 제조공법으로 인삼주를 빚는다. 어떤 이는 이를 두고 ‘빈티지 인삼주’라고 한다.

“고객 맞춤형 인삼주만 제조해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일에 맞춰 ‘노사모’에서 주문한 술, 손자의 대학입학을 기념해 만든 술, 3년 후 부모님 칠순 때 함께 마시기 위해 담근 술 등 다양하죠.” 그가 만드는 술 한 독에는 제각각 사연이 얽혀 삶이 익어가고 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술이다.

제조된 술은 고객이 직접 서명한 증지를 부착하고 밀랍으로 봉한 뒤 그 위에 회사 검인을 날인한다. 사용원료, 제법, 주질 및 소유자의 변화내용 등을 족보로 만들어 지하 숙성실을 떠나는 날까지 술의 전 생애를 관리한다. 국제관례상 숙성주의 판정 기준은 최소 3년이기 때문에 고객들에게 3년 이상은 숙성시킬 것을 권유한다.

이 술로 인생은 버무려지고 그의 회사는 영글어 간다. 그는 “우리 회사는 꿈이 크고 야무진 곳”이라고 말한다. 회사가 있는 경기도 안성에 ‘인삼주 마을’을 조성해 인삼주를 세계적인 명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이미 유기농 인삼 확보가 가능한 참살이 농장, 교육장, 레저·숙박시설을 기반으로 바우덕이 축제와 같은 안성의 전통문화 자원들과 연계해 인삼주 테마파크를 만들고 있다.

프랑스의 코냑, 영국의 스카치 등 각 나라에는 그 나라를 대표하는 술이 있다. 그것들은 수백 년간 시간의 흐름과 함께 가치가 숙성돼 대대손손 전해져 내려온다. 우리나라도 100년 뒤 후손에게 물려줄 명품 술을 만드는 것이 그의 꿈이다.

“그러기 위해선 정확한 족보와 공법으로 하루빨리 술을 담가야 해요. 저장·숙성 조건도 확실히 관리해야죠. 더 중요한 건 욕심이 나더라도 절대 마시지 말고 후손에게 물려주는 거에요.”

이 일을 위해 그는 지난 30년 간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 왔다. 그는 “대학교 때 친구들이 지금 하는 일을 많이 도와주고 있다”면서 “그때부터 똑같은 얘기를 수십 년째 하고 있어서 그런가보다”라고 말했다.

그에게도 숙성의 시간은 필요했다
대학에 갓 입학한 소년은 멋진 ROTC가 되고 싶었다. 시험을 거쳐 한 달 동안 훈련도 받았지만 군인이라는 꿈은 이룰 수 없었다. “왼쪽 눈이 -18, 오른쪽 눈이 -12에요. 이게 걸려 쫓겨났어요. 그런데 그때 제가 정수장학회 1기여서 국가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수출 보국에 도움이 되는 술 전문가가 되자고 결심했죠.”

술은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가 높아지는 농산 가공물인데다 명주는 그 나라의 사회·문화적 자부심이다. 그는 술이 전통적 가치와 사랑의 대물림이라고 생각했다.

술 문화는 국적과 민족성이 뚜렷해 각 나라마나 특색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그는 프랑스 나름의 멋과 맛, 그리고 그들의 세계화 전술을 익히고 싶었다. 대학교 3, 4학년 때 프랑스어를 공부하고 졸업한 뒤 1년 동안 회사에 다니며 유학자금을 모았다. 그때 사장이 그의 뜻을 높이 평가해 장학금을 지원해줬다. 각고의 노력 끝에 4년 만에 술 박사 학위를 취득할 수 있었다.

“코냑으로 유명한 ‘까미유’ 집안의 친구가 절 초대했어요. 식사를 마치고 ‘파라디에 갈래?’라고 묻는 거에요. 프랑스어로 ‘천국’이라는 단어니 룸살롱인 줄 알았죠(웃음). 그런데 지하의 술 저장고로 데려가는 거에요. 그 중 한 통에서 ‘우리 아버지가 내가 태어난 것을 기념해서 담그신 거야. 소중한 사람들과 나누라고’라며 술을 조금 따라주더라고요. 그날 마신 건 그냥 술 한 모금이 아니었어요. 까미유 집안 그 자체였죠.” 그 검붉은 액체 속에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보이지 않는 선이 숨겨져 있었다.

정작 그의 주량은 단 2잔이다. ‘애(愛)주가’이긴 하지만 ‘다(多)주가’는 아니다. 그는 “이래서 오히려 술을 연구할 수 있었다”며 “많이 마시는 사람은 술과 적절한 거리를 두기 어렵지 않겠느냐”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맹물인 듯 독물인 듯
같은 물을 마셔도 젖소는 우유를 만들고 뱀은 독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같은 술을 마시더라도 인생의 활력소가 되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술 때문에 건강과 재산을 잃는 경우도 있다. 술을 만든 것도 사람이고 그것을 조절하는 것도, 자기가 만든 수렁에 빠지는 것도 사람이다.

술을 사랑하는 그의 또 다른 꿈은 아름다운 음주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다. 술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마셔대는 사람은 마실 자격이 없는지도 모른다. “사람이 술을 마시다 죽는 경우는 우리나라밖에 없어요.” 그가 학교 안팎에서 음주 문화와 예절을 교육하는 이유다. 대학생 새내기부터 CEO, 고위 공무원까지 그 대상이 다양하다.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우리 조상은 술은 멀리해서도, 너무 가까이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음주는 식사 후에 하고 잔은 내려놓고 있어야 한다”며 “개방된 장소에서 천천히, 여러 모금으로 나눠 마셔야 한다”고 올바른 음주문화에 대해 역설했다.

그에게는 세 딸이 있다. 그 중 셋째 딸이 유독 아버지가 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 옆에서 강요한 것도 아닌데 먼저 발 벗고 나섰다. “아직 고등학교 3학년이에요. 발효공학과에 가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누군가는 해 나가야 할 일을 딸이 한다고 하니 고맙죠.” 우리나라 전통주를 발전시키고 세계화하는 일이 정씨 가문의 가업이 될 날이 멀지 않았다.

그가 “먼 길 오느라 수고 많았다”며 인터뷰가 끝난 뒤 ‘첫 쌀 막걸리’를 건넸다. 지난 2010년 ‘국내에서 가장 처음 생산되는 쌀로 만든 술은 어떤 맛일까’ 하는 호기심에 만든 것이다. 하얀 독에 말갛게 가라앉은 막걸리를 흔들어 목으로 흘러 넣으니 맑음과 탁함의 맛이 골고루 어우러진다. 그 한 모금에 피로를 잊고 두 모금에 기운을 낸다.  

사진 류민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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