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 이나영 기자
  • 승인 2012.03.10
  • 호수 136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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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3월 15일 부정선거에 대항한 마산시위

▲ 1961년 마산 시민들이 3.15 의거 1주년 기념식에 참여하고 있다.
투표소로 가는 아침 길목엔 백색 완장을 찬 자유당 사람들과 녹색 제복을 입은 반공청년당원들이 시민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으로서 당당하게 주권을 행사하러 가야 할 시민들이 공포에 떤 채 투표소로 향하는 현실이었다. 게다가 3인조로 묶어 투표를 하라니!

그뿐만이 아니었다. 사전 투표를 감행해 유권자의 4할에 해당하는 표를 이미 투표함에 넣어놓았다는 것이었다. 유권자들은 민주당사에 몰려와 “빼앗긴 내 표를 달라”며 아우성이었다. 오전 10시 30분 경, 우리 민주당 마산시당은 선거포기를 선언하고 부통령선거대책위위원장 민영학의 집에서 데모를 준비했다.

자유당에 대한 반발심은 범국민적인 정서였다. 실업률이 35%에 치닫고 물가도 걷잡을 수 없이 올라 생활고에 시달리던 국민들이 이승만 정권에 반항했던 것이다. 국가를 되살리는 데는 관심 없고 오직 정권연장에만 혈안이 됐던 이승만 정권에 실망한 국민들은 우리 민주당으로 마음을 바꿔왔다.

4년 전 정부통령선거에서 민주당 후보였던 신익희 씨가 선거 유세기간 중 사망하는 바람에 이승만 대통령이 다시 집권하게 됐다. 그러나 부통령엔 민주당 장면 씨가 당선됐던 것을 봐도 범국민적인 정권교체 의지를 알 수 있었다.

특히 내가 있는 마산 지역에선 자유당에 대한 반발심이 유난히 더 컸다. 2년 전 민의원 총선거에서 마산 시민들은 자유당에 대한 반감을 표명하기 위해 민주당 허윤수 의원에게 표를 줬다. 그러나 허 의원은 민주당을 배신하고 자유당에 입당했고, 배신감에 휩싸인 마산 시민들은 자유당에 격분했다.

오후 1시 경부터 도의원 정남규 씨와 동아대 안종성 학생이 시민들에게 선거포기에 대해 설명하고, 정권에 저항할 것을 선포했다. 얼마 후 민주당 마산시당 앞에서부터 불종거리까지 시민 1200여 명과 학생 300여 명이 모였고, 우리는 지프차를 앞세워 가두시위를 하려 했다.

무장경찰과 몽둥이를 손에 든 반공청년단원들은 군중들을 가차 없이 때려댔다. 여린 학생의 머리를, 힘없는 노인의 가슴을, 자유를 외치는 사람들의 주먹을. 민중들의 마음에도 피가 흘렀다.

그런 못된 꼴을 당하고도 시민들은 다시금 일어났다. 나 역시 민중들의 열기에 벅차올랐다. 수백 명의 시민들이 남성동파출소를 포위해 돌을 던지며 소리쳤다. 사전 계획이나 지휘자 따윈 없었다. 그간 쌓였던 분노가 폭발한 것이었다.

경찰이 최루탄을 발사하고, 위협사격을 가했다. 시민들의 공격에 소방차가 전봇대를 들이받아 마산 일대가 정전이 됐는데 이때를 틈타 경찰들이 시민들을 향해 발포했다. 순식간에 사상자가 생겼다. 마산 전체를 누비던 시민들이 참혹히 죽어갔다. 나를 비롯한 다른 당원들은 이 사태를 듣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반공청년당원과 경찰들은 민주당 간부들과 시민들을 끌고 가 잔인하게 고문하며 배후조종자를 추궁했다. 정부는 간첩에 의해 일어난 데모라고 조작하기에 바빴다. 민주당 중앙본부조차 경찰의 폭력을 비판하긴 커녕 “국민은 법질서를 지키라”고 훈계나 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찰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나와 민주당의 현실이 나를 더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시위는 점차 더 거세질 것이다. 이번 일은 국민을 우습게 본 정부의 업보다. 민주당원인 우리도 못한 일을 국민이 해냈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도움·감수: 류승주<인문대 사학과> 교수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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