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감께 상소 드립니다
대감께 상소 드립니다
  • 이나영 기자
  • 승인 2012.03.04
  • 호수 136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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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 3월 9일,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 <가장 먼저 철폐된 만동묘>
신하 이항로 아룁니다, 대감. 유생들이 이토록 반대하는 명령을 왜 내리셨나이까. 종전에 만동묘를 철폐 하라하셨을 때 올린 비판의 상소를 보시고도 서원들을 철폐하시겠다는 것입니까.

150년이 넘도록 존속 돼 온 만동묘는 유림들과 백성들이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와 준 명 신종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 입니다. 그동안 전토와 노비를 받아 서원 못지않게 혜택을 누려온 것은 사실이나, 만동묘를 철폐하라는 것은 극단적인 선택이옵니다. 유림들과 백성들이 마음을 다해 제사를 드리던 곳을 단번에 자르시다니요.

만동묘가 철폐되고 난 후 대감께서 전국의 서원들도 철폐하시리란 것은 짐작했사옵니다. 그러나 유생들이 모여 학문을 강론하고, 선현께 제사 드리는 향촌의 질서를 유지하던 곳이 바로 서원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서원을 단숨에 없애버리는 것은 향촌에서 세력을 떨치고 있는 유생들에게 큰 혼란을 가져올 것입니다.

대감께서 서원 자체를 ‘악’이라 하시어 이에 실망한 유림들이 대감께 등을 돌리게 된 것을 아시는지요. 그간 유생들이 올린 많은 상소문을 통해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대감께서 개혁하고자 하시는 일들에 유생들이 지지하지 않을 것은 당연한 일이옵니다.

서양세력과 일본을 배척하는 정책 외에 다른 개혁에도 지지를 했던 대감의 신하이지 않습니까. 높은 벼슬도 제게 하사하셨던 대감께 감히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섭섭하게 들리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대감, 저는 우리 유생들이 학문을 연구하고 정책에 관해 논할 수 있는 서원이 있어야만 대감의 정치에도 더욱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서원 철폐에 관한 논의는 영조 17년부터 시작됐으나 그 후에도 서원은 꾸준히 설립 됐습니다. 가문과 위세를 높여 향촌에서 지위를 유지하려는 서원들이 많았습니다. 게다가 서원의 재정에 대해 보고하라는 명령도 잘 지키지 않은 탓에 대감께서 화가 난 것이지요.

그동안 서원이 조세를 면제받아 모자란 세를 백성들이 충당하고, 서원의 노비가 돼 군역을 기피하려는 양민들이 늘어나는 등 많은 피해를 준 것은 사실입니다. 또 서원이 붕당정치의 시작인 것도 맞습니다. 붕당끼리의 싸움이 변질돼 특정 가문이나 서원의 유생들이 조정을 차지하게 된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대감께서 무조건적인 서원의 철폐를 명하시는 것은 더 큰 반발을 불러올 뿐이며, 유생들의 반성을 기대하기도 어렵습니다.

대감께서 미약해진 왕권을 강화하고, 낭비되는 경제적 손실을 막기 위해 서원을 철폐 하시려 하는 것을 제가 왜 모르겠습니까. 이미 사림은 각 지방에서 서원을 통해 세력이 커진 상태입니다. 단숨에 그들 세력을 내치려 하지 마시고, 시간의 여유를 두고 그들에게도 개선의 기회를 주시는 것은 어떠하신지요.

서원의 권위는 예전보다 많이 실추 됐습니다. 수령이나 향리들이 서원을 침탈하고 얕보는 사건들이 많아졌습니다. 대감께서도 이를 아시기에 서원을 정리할 명분을 얻었다고 생각하시겠지요.

유생들도 권위를 세우기 힘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기회를 주십시오. 이전에 토지 지급을 중단하고, 세금을 부과해 철폐령을 대안할 방도도 세우지 않으셨습니까. 그때와 같이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하시는 것이 대감께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백성들을 위한 개혁이라지만, 혹여 대감의 왕권 강화가 더 앞선 명령은 아니었는지요. 신하 된 자로써, 한 때는 대감을 따르던 자로써 대감께서 신하들과 백성 모두에게 마음을 얻는 정치를 하시길 바랍니다.                            

도움: 김민석<인문대 사학과> 교수
사진 출처: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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