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즈-루즈 전략 속에서 ‘본분’을 외쳐보다
루즈-루즈 전략 속에서 ‘본분’을 외쳐보다
  • 김명지 기자
  • 승인 2012.02.24
  • 호수 13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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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울 학(學)자에 날 생(生)자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학생의 본분은 공부다”란 말을 수도 없이 들어왔다. 참 지겹다. 그리고 또 민망하다. 지겹다, 지겹다 해도 어쩌면 우리가 그 어떤 것보다도 강력하게 사수해야 하는 명제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학교 학생들은 그 사실을 몸소 깨닫고 있는 것 같다.

등록금 관련 움직임이 끝날 듯 끝나지 않고 있다. 그 중 학생들에게 가장 이슈가 될만한 사실은 학교 지정 공식 수업시수가 16주에서 15주로 변경돼가는 듯 하다는 것이다.

학교 측은 등록금과 상관없이 이전부터 논의돼왔던 일이며 학칙도 이미 개정돼있어 문제가 없다고 전했다. 그러나 학생 측은 학교가 등록금 인하와 수업시수 축소를 맞바꾸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학교 측은 16주에서 15주로 변경하는 것은 중간고사 등의 시험 기간 1주를 빼고 시험 방식을 교수 재량에 맡기는 것이기 때문에 수업권에 대한 침해는 없다고 했다. 그러나 학생 측은 교수가 시험을 보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이것이 자연스레 수업시수가 한 주 단축되는 것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비유해 ‘조삼모사’라고 표현하기까지 했다.

알 수 없다. 실제 학교 측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그들이 주장하는 ‘원래부터 계획했던 것’인지 학생 측이 주장하는 ‘수업시수와 맞바꾸는 조삼모사’인지 진위여부는 앞으로도 여전히 알 수 없을 것이다.그러나 의도야 어쨌든 이는 모두에게 ‘루즈(Lose)-루즈(Lose)’ 전략인 것으로 귀결됐다는 점은 많은 이들이 공감할 것이다. 학교는 이 사실이 대외적으로 ‘그깟 등록금 몇 퍼센트 인하에 수업시수를 줄인 학교’로 알려지며 곤욕을 치렀고 학생들은 수업시수 단축으로 인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손해와 박탈감을 얻어야 했다.

의도가 사실 어쨌는지는 중요하지 않게 됐다. 얻은 것은 누구고 잃은 것은 누군지, 결국 그 경계가 불분명하게 되고 말았다. 그리고는 개강이다.

가만히 지켜보던 말문이 열렸다. 마침내, 학생들로부터 “차라리 등록금을 동결해서 수업시수를 유지해 달라”는 말이 나왔다. 루즈-루즈 전략 속에서 참다못해 터져 나온 탄식이었다. 아무래도 여느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학생으로서 ‘본분’을 지키는 것이었나 보다. 등록금 인하로 수업시수가 줄어들게 된다면 차라리 인하하지 말라는 한탄이자 애원이었다.

학생들은 본분을 찾고 싶다. 지성을 찾고 싶다. 학생들은 학생으로서 누릴 수 있고 누려야 하는 본분 이행의 자유에 목말라 있다. 그것을 돕는 것이 학교의 의무 중 하나라고, 그렇기 때문에 이번 처사가 더욱 정당화되기 어렵다고 감히 생각해본다.

“수업시수 늘이면 안하던 공부를 할 것인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법하다. “꼭 공부 안한 애들이 저러더라고.” 공부를 안 하는 한 학생 개인의 잘못을 학생 전체의 권리 박탈과 연결 짓는 착오를, 부디 우리학교 학생이라면 겪지 않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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