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만 얼굴 속 빠알간 마음
까만 얼굴 속 빠알간 마음
  • 박욱진 기자
  • 승인 2011.12.05
  • 호수 13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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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 나눔 봉사현장에 가다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군가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안도현 ‘연탄 한 장’ 중-
연탄은 쉽게 타오르지 않지만 쉽게 꺼지지도 않는다. 오래도록 따뜻함을 간직하고 서서히 하얗게 색을 바래간다. 생각해보니 주위엔 연탄들이 가득하다. 언제나 반겨주는 부모님, 힘이 되는 친구들. 지난달 26일 우리학교 사회봉사단이 성동구의 연탄이 되고자 연탄봉사를 실천했다.

오전 11시 서울로 가는 지하철에 올라탄다. 평소라면 친구를 만나러 간다거나 늦잠을 자고 있을 시간이지만 학교로 가고 있다. 늦을 것만 같아 식사도 못하고 나왔지만 평소처럼 짜증나는 통학길은 아니다. 우리학교 학생들과 연탄배달 봉사를 하러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지하철에는 어느새 ‘한양대’라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서둘러 내렸다.

모이는 장소인 본관 앞은 학생들로 가득하다. 성동구 일대 각 마을마다 약 40명의 학생이 조를 이뤄 출발한다. 같이 봉사할 학생들은 우리학교 RCY단원들이다. 조원들과 새로배움터 자기소개처럼 어색하기 그지없는 인사를 나눴다. 봉사에 앞서 김현숙<사회봉사단 행정실>팀장님이 봉사활동의 취지에 대해 설명하신다.
“성동지역 저소득 가정에 따듯함을 나눕시다. 우리의 따듯한 마음이 포근한 겨울을 만들거에요.” 

▲<학생들이 지그재그로 연탄을 나르고 있다 >
나를 포함한 4조가 향한 곳은 사근동이다. 의대 쪽 후문을 지나 한대부고를 끼고 오르막길을 오른다. 몸을 쓰는 봉사는 거의 처음인지라 잘할 수 있을 지 걱정이 앞선다. 그래도 좋은 일을 한다는 자부심에 걱정은 금세 사라졌다.  사근동은 낯설었다. 판넬벽을 지나니 옹기종기 모인 슬레이트 지붕들이 눈에 들어왔다. 캠퍼스와 왕십리의 왁자지껄함과 다르게 이곳엔 개 짖는 소리만이 간혹 들렸다. 서울은 번화가만이 가득하리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열악한 동네에 당혹감을 느낀다. 주위를 둘러보지 않고 학교만 다닌 건 아닐까 싶어 숙연해졌다.

연탄배달의 시작이다. 앞서 나눠준 목장갑을 끼고 앞치마를 여몄다. 성동지역 전체에 연탄 9천장을 나눠준다고 한다. 우리가 맡은 양은 대략 900장. 첫 번째 집은 내리막길에 위치했다. 세 명이 들어가면 꽉 차는 골목에 지그재그 두 줄로 선다. 연탄이 손에서 손으로 내려오는 방식이다. 처음엔 속도가 나지 않아 연탄이 자주 멈춰섰다. 하지만 익숙해지고 서로의 속도를 맞추다 보니 어느새 눈코뜰새 없이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연탄을 다 옮겼다고 끝이 아니다. 연탄재로 얼룩진 길가와 집 입구를 쓸어야 한다. 추운 날이지만 어느새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눈까지 내려왔다.

 두 번째 집은 좀 더 깊숙한 곳에 있었다. 주인 할머니 보다 먼저 반긴 건 할머니댁 개였다. 주인 할머니께선 연신 고맙다고 말씀하신다. 아직 연탄이 많이 남았다. 다시 번갈아가며 연탄을 옮기던 중 난관에 봉착했다. 연탄을 놓는 곳이 바로 화장실 옆이었기 때문이다. 아직은 재래식 변기가 대부분인 동네다. 코를 막고 싶었지만 그럴 순 없었다. 연탄은 두 손으로 옮겨야 되니까.

<연탄을 나르던 도중 대열이 벌어지자 한 학생이 연탄을 던져 나르고 있다. 나중에는 다른 이런 상황에도 능숙하게 대처했다.>
잠시 숨을 돌리는 사이 할머니께서 커피를 타오셨다. “학생들 추운데 마시고들 해” 커피위에 연탄재가 떠있었지만 할머니의 마음을 저버릴 수 없었다. 한 번에 마셨다. 입천장이 데였지만 아리진 않았다.정신없이 움직이다 보니 벌써 마지막 집이다. 이제는 서로를 보지 않아도 연탄을 주고받는다. 지그재그로 주고받던 연탄이 마치 듀얼코어 컴퓨터처럼 두 줄로 옆 사람에게 전달된다. 처음의 정체되고 연탄을 떨어트리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같이 일한 장효선<사회대 관광학부 10> 양은 나에게 “연탄공장에 취직해도 손색이 없겠다”고 칭찬한다.

“수고하셨습니다” 연탄배달에 참여한 4조 전원이 외쳤다. 세 집 900장의 연탄 배달이 끝났다. 피곤함 보다는 임무를 완수했다는 후련함이 앞섰다. 땀과 연탄가루가 섞여 땟국물이 줄줄 흘렀지만 서로의 얼굴에 연탄재를 묻히는 장난에 고단함은 모두 잊었다. 단체사진을 찍을 땐 후줄근한 꼴을 면할 수 없었지만 웃음만은 깔끔했다.

사진 이재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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