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디스토피아를 ‘회고’하다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회고’하다
  • 김명지 기자
  • 승인 2011.11.19
  • 호수 13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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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이 상상한 ‘미래’는 도래하지 않았지만
▲ <조지 오웰>
영화 「브이 포 벤데타」는 미래 사회를 가정해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후의 통제된 영국사회를 그리고 있다. 조지 오웰의 저서 「1984년」 역시 이와 같이 ‘디스토피아’ 사회가 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가상적 이상향을 뜻하는 유토피아와 이와 반대로 최악의 세계를 가정한 디스토피아는 모두 사회 현실과 밀접히 연관돼 있다. 박경서<영남대 영어영문학과> 강사는 “유토피아는 현실에 만족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것이고 디스토피아는 현재의 상황에서 더욱 악화될 것이란 전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와 소설 「1984년」 속 세계의 사람들은 디스토피아 사회의 감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소설 속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이런 현실을 무감각하게 받아들이며 살다가 문득 현실에 대해 각성하게 되고 자신을 지배하는 당에 반감을 품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가 처한 현실은 참담하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서 거리에 카메라와 녹음기가 설치돼 있듯 소설 「1984년」에서도 사람들의 삶을 주시하는 ‘빅브라더’의 그림이나 텔레스크린 등이 곳곳에서 윈스턴을 위협하고 있었다. 빅브라더는 절대권력자이지만 사실은 실체가 없는 상징적 존재이다. 당은 빅브라더란 가상의 존재를 설정해 국민들을 통합하고 강제하려 했던 것이다.

국민들을 억압하는 또 다른 장치가 있다. 1984년의 세계는 이스트아시아, 유라시아, 그리고 윈스턴이 살고 있는 오세아니아 단 세개의 대륙 체계로 나눠져 있다. 다양하게 분화돼 있던 대륙과 문화는 함께 뭉쳐져 말살된 것이다. 언어는 ‘신어’란 체계로 바뀌어졌다. 신어 체계에서 좋음(good)의 반대말은 좋지 않음(ungood)으로 고정돼있으며 훌륭함(excellent)이나 굉장함(splendid) 등을 표현할 말은 없다. 사람들의 사고를 표현할 폭은 좁아진다. 박 강사는 “빅브라더를 위시한 당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민중이 힘을 모아 체제를 전복시키는 것이었다”며 “신어 체계는 민중의 사고 자체를 통제하려는 당의 의도”라고 설명했다.

제목 「1984년」은 오웰이 책을 집필하기 시작한 1948년에서 뒤에 두 자리의 순서를 바꿔 놓은 것이다. 오웰은 자신이 살고 있는 1948년에서 미래의 1984년을 내다보았다. 1903년 영국인으로 태어난 오웰은 근대 유럽에서 벌어진 1차, 2차 대전과 독일의 나치즘, 이탈리아의 파시즘, 스탈린 정권의 부조리 등을 지켜본다. 박 강사는 “오웰은 전체주의가 부활하고 있는 모습을 통해 정치와 인간의 관계에 대해 깊은 회의를 느꼈으며 머지않아 인간의 의식이 정치적 현실에 지배당할 것이란 생각을 갖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탓에 오웰과 오웰의 저서는 종종 반공주의 노선을 선전하는 데 활용되기도 했다. 그의 대표작인 「1984년」과 「동물농장」 등이 스탈린식 사회주의를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오웰은 사회주의자에 가깝다. 스페인에서 우파 프랑코 장군이 사회주의 정부에 대항해 쿠데타를 일으켜 시작된 내전에서 정부군을 돕는 ‘인민전선’에 참가해 활동했을 정도다. 이때의 기억은 저서 「카탈로니아 찬가」에도 잘 드러나 있다. 박 강사는 “오웰은 사회주의를 구현하고자 하는 한편 냉철히 비판하고자 했던 인물”이라며 “현실에서 사회주의가 그의 이상대로 실현되지 않음을 애석해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작품을 통해 오웰이 전하고자 한 것은 사회 현실에 대한 진지한 고찰과 각성이었다. 박 강사는 “소설 「1984년」은 당대 사회의 정치 구조를 비판하며 이것이 개선되지 않으면 결국 빅브라더와 같은 존재가 출현해 자유와 인간성이 상실할 것이란 암시를 준 것”이라며 “인류 공동체를 향한 경고의 문학”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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