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이 끝났으니 수험생활 동안 가족과 소원했던 관계를 개선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민하의 다짐은 대학교에 들어오면서 무너졌다. 아침엔 학교에 오느라 바쁘고, 저녁 늦게까지 술자리에 있다가 집에 들어가면 12시가 훌쩍 넘는다. 가족과 마주할 시간은 하루에 30분도 채 되지 않는다.

2008년 1월 구인구직 포털사이트 알바몬이 대학생 1천 12명을 대상으로 ‘대학생의 가족 간 대화 실태’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들이 가족과 하루 평균 42분 대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로 떨어져 생활하는 학생의 경우는 가족 대화 시간이 하루 평균 11분에 그쳤다. 또 같은 포털사이트에서 2009년 1월 대학생 1천 12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35.4%가 주요 대화상대로 ‘친구’를 꼽았다. 설문조사의 결과는 요즘 대학생들은 가족 간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공승배<인문대 국어국문학과 11> 군은 “집에 있을 때 부모님과 대화를 잘 하지 않는 편”이라며 “학교 때문에 떨어져 사는 지금이나 같이 살던 때를 비교해도 대화 시간에 큰 차이가 없다”고 했다. 이어 공 군은 “동생과 대화를 한 것은 무척 오래 된 편”이라며 가족과의 소통이 잘 되지 않음을 시사했다. 가족과의 의사소통 단절 문제는 비단 남학생들만이 겪는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부모님의 맞벌이로 인해 부모님과의 대화가 줄어들었다는 이현주<인문대 중어중문학과 11> 양은 “대화시간이 적어지니 부모님과 자주 싸우게 됐다”며 “원래는 사이가 좋았는데 요즘은 서로 마주하고 있으면 마찰이 생기니 서로 피하려는 게 눈에 보인다”고 했다. 이 양은 갑작스레 변한 부모님과의 관계에 아쉬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가족과의 좋지 않은 관계는 대학생들의 사회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안윤영<교육대학원> 교수는 “가화만사성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가족과의 갈등이 지속되면 불편한 감정이 정서를 압도해 자신의 기분을 주변 사람에게 투사하게 된다”며 가족과의 관계가 주변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다고 말했다. 이어 안 교수는 “가족과의 관계가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정서적으로 건강할 수 없다”며 “가족 간의 솔직하고 건강한 의사소통은 관계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중요한 열쇠”라고 중요성을 지적했다.

논문 「자아존중감, 가족 기능 및 사회적 지지가 대학생의 스트레스에 미치는 영향」에서는 “대학생들은 가족 기능에 만족할수록 스트레스가 낮아지며, 가족건강성이 높을수록 자아존중감이 높아지는 경향을 보인다”고 밝히고 있다. 이어 학교 측에서는 대학생들이 가족과 원만한 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가족 기능 향상 방안을 모색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목희진<한국외대 국제학부 11> 양은 가족과의 활발한 의사소통으로 대학생활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목 양은 “고민이 있을 때 부모님에게 자주 털어놓고 하루 평균 한두 시간씩 부모님과 대화하는 편”이라며 “부모님과의 관계가 좋으니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무난하게 잘 지낼 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최근 대학생 상당수가 소유하고 있는 스마트폰은 가족 간의 소통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은 스마트폰의 SNS 어플리케이션으로 가족과 수시로 연락을 하기도 한다. 최진혁<고려대 국제어문학부 11> 군은 최근 메신저 어플리케이션인 ‘카카오톡’의 그룹채팅 기능을 이용해 가족과 채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최 군은 “그룹채팅 기능을 사용하니 가족이 함께 대화를 할 수 있고 색다른 기분이 들어 연락을 자주 하게 된다”며 “집을 떠나온 지 4년째인데 최근 들어 사이가 더욱 돈독해졌다”고 다른 학생들에게도 시도해 볼 것을 권유했다.

대학생들이 가족 간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할 일에 대해 안 교수는 “나 자신부터 개선되지 않으면 그 누구도 바뀌지 않는다”며 “가족이 자신에게 원하는 것을 말할 때 잘 경청할 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모든 인간관계의 기본이자 마지막 보루인 가족에게 가깝다는 이유로 소홀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함도 함께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