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가 된 서울 두 번째 상설시장
최초가 된 서울 두 번째 상설시장
  • 류민하 기자
  • 승인 2011.11.07
  • 호수 13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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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와 두 번째, 남대문시장과 광장시장의 탄생

“계란이 왔어요, 계란. 싱싱한 계란이 왔어요”, “배추, 무, 시금치, 싱싱한 상추가 있어요”. 지금도 아파트단지에서는 가끔 이런 확성기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 소리는 원래 시장에서  육성으로 자주 들리는 소리들이다. 물건을 사고팔고 구경하는 사람들이 만나는 시장은 서울사람들의 생활을 살펴보는데 빠질 수 없는 곳이다. 서울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상설시장의 역사에 대해 살펴보자.


서울 최초의 상설시장은 어디일까. 많은 사람들이 동대문 근처의 ‘광장시장’으로 알고있지만 최초는 1897년 1월 세워진 ‘남대문시장’이다. 남대문시장은 최초의 상설시장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1997년을 100주년 축제없이 지나쳤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 <1910년대 신창안장 풍경>
남대문시장의 옛 이름은 ‘신창안장’(이하 창안장)이다. 사회경제사학계 원로인 고(故) 고승제 교수는 연구과정에서 이를 밝혀내며 이름에 신(新 새로울 신)이 붙어있으니 광장시장보다 나중에 만들어졌다고 해석했다. 이 해석은 학계에서 정설로 받아졌다.

하지만 후세의 연구결과 ‘신창’이라는 이름은 상평창(곡물가격의 조정을 위해 국가에서 설치한 기구)이 선혜창으로 바뀔 때 붙은 별칭이다. 지명에 붙은 ‘신’ 은 근래 만들어진 것뿐 아니라 옛날에 ‘새로’ 만들어져도 뒤에 다른 것으로 대체되지 않으면 유지된다. 신창안장은 이런 사정으로 서울 최초의 상설시장이라는 ‘영예’를 광장시장에 넘겨줬다.

창안장은 문을 열자마자 수많은 상인들을 끌어모으며 장안의 중앙시장으로 떠올랐다. 일본인들에게 창안장은 눈엣가시였다. 창안장이 일본인 상권을 가로막고 있었을 뿐 아니라 엄청난 규모로 확장된 경부철도 남대문정거장 바로 옆에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황실과 정부에 시장을 다른 곳으로 옮기라는 압력을 넣었다.

소식을 들은 일부 고관과 장사꾼들은 천변의 일부 구간을 복개해 별도의 상설시장을 설치할 계획을 세웠다. 복개가 이뤄지면 원래 시장보다 더 넓은 땅이 만들어지고 위치상으로도 남촌과 북촌 주민들이 쉽게 드나들 수 있어 목이 좋았다. 그들은 ‘광장회사’를 설립하고 자본을 모아 공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1905년 여름 천변에 큰 홍수가 나 쌓아둔 자재가 모두 유실되는 사태가 발생한다.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지만 광장회사 직원들은 조선 후기 양대 조시(아침에만 열리는 시장)를 이뤘던 배우개로 눈길을 돌렸다. 당시 친위대 자리 옆이자 지금 광장시장의 길 건너에 있던 터를 얻어 고사를 짓고 새 상설시장을 만들었다. 이렇게 서울의 두 번째 상설시장인 광장시장이 만들어졌다.

남대문시장과 광장시장은 지난 한 세기 동안 서울행상들의 근거지였다. 상인들은 이곳에서 물건을 떼어다 골목골목 돌아다니며 팔거나 이곳에 모여들어 지나가는 행인들을 불러모았다. 이 두 곳을 기점으로 시내 각 처로 이어지는 길목은 상인들의 외치는 소리로 언제나 시끌벅적했다.      

사진 출처 : 구글 이미지
참고 : 논문 「서울의 상설시장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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