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어링의 사과, 잡스의 사과
튜어링의 사과, 잡스의 사과
  • 한대신문
  • 승인 2011.11.01
  • 호수 13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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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전자 업계에서 앞날을 예측하는 것은 마치 쏘아지지 않은 화살의 궤적을 미리 예상해서 맞춰 떨어뜨리는 일과 같다”라고 국내 유수의 전자업체 회장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전자 산업에서 장래를 예측하며 투자를 결정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설명하는 말이다. 한편으로 공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라면 사정이 달랐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컴퓨터 산업은 그 사업에 종사하는 사업가들이 미래에 대해서 어떤 계획과 비전을 갖고 있는가에 의해 상당 부분 결정된다.

IT계의 리더 중에서도 다른 이들보다 한발 앞서 나아가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던 스티브 잡스가 서거했다. 여러 매체들의 전언을 통하여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음에도 놀랍고 슬픈 소식이다.

스티브 잡스는 앨런 튜어링(Alan Turing)을 아주 좋아했던 모양이다. 튜어링은 2차대전 독일군의 암호 해독에 기여하면서 암호학을 만들었다. 또 교수 이외에는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던 비트겐시타인의 철학 교실에서 그와 논쟁이 허락되었던 유일한 수강생(?)이다. 영국의 수학자 튜어링은 가장 보편적인 컴퓨터 언어 ‘튜어링 머신’을 개발해 컴퓨터 과학의 발전에서도 중요한 기여를 했다.

동성애가 불법으로 간주되던 당시 영국에서 튜어링은 동성애자로 판결받았다. 그의 명성과 애국 활동을 고려한  법원은 그에서 정기적인 남성 호르몬 투입이라는 ‘관대한’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이 판결을 매우 모욕적인 것으로 받아들인 튜어링은 독사과 한 입을 베어먹고 자살하였다.

잡스는 튜어링의 사과를 자신의 사업체의 로고로 삼았다.잡스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들이 애플사와 잡스의 저택에  많은 사과를 가져다 놓았다. 그의 죽음 이후 애플사의 명운에 대해서도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그의 죽음과 더불어 인류는 네 번째의 전설적인 사과를 갖게 됐다. 아담의 사과, 로빈 후드의 사과, 뉴턴의 사과에 이어서 잡스는 네 번째 사과인 튜어링의 사과를 선물한 셈이다. 이 사과를 ‘잡스의 사과’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는 컴퓨터 시대를 앞장서서 열었고, 자신의 모든 날을 생의 마지막 날로 여기며 살았다. 한 입 베어문 전설적인 사과를 우리에게 남기고 서거한 스티브 잡스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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