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배와 효율사이의 균형
분배와 효율사이의 균형
  • 김차동<법대 법학과> 교수
  • 승인 2011.10.31
  • 호수 13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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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생 무상급식에 대한 찬반논란이 거세다. 정치적 입장과 개인의 주관적 선호도만으로 찬반입장을 정하는 것은 대학물을 먹는 사람의 태도가 아닐 것이다. 격한 논쟁의 시대에 제대로 된 입장을 취하는 것이 세류에 흔들리지 않는 올바른 처신이라 생각된다. 배분적 효율성(allocative efficiency)과 분배적 효율성(distributive efficiency)이란 알송달송한 용어가 있다. 한글로는 단지 글자결합의 순서만 바꾸어 놓았을 뿐인데 그 지향하는 바는 천양지차다. 그냥 전자는 효율성, 후자는 분배의 정의라고 이름붙이면 더 이상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가끔, 학생들에게 이건희의 부를 빼앗아 거지에게 나누어 주면 분배적 정의는 실현될지 몰라도 효율적인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설명하곤 한다. 그러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더 설명해 달라고 한다. 분명 이건희에게서 만원을 받아 거지 1명에게 주면 아마도 효율적일 것이다. 왜냐하면 거지는 그 돈으로 빵과 우유를 사 목숨을 연명하게 될 것이지만 이건희는 금액의 크기로 보아 고급레스토랑에서 팁으로나 쓸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희로부터 100만원을 받아 거지 1명에게 주면 그 거지는 그 돈으로 무엇을 할까. 아마도 그 거지는 옛날 습관을 못버려 도박을 하거나 마약을 하거나 하면서 그 돈을 허비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건희는 그 돈으로 투자에 나설 수 있다. 이처럼 부자로부터 가난한 자에게로 부를 이전시키는 데는 그 경로에 따라 복잡한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에 간단치 않다.

대한민국은 경제적 자유를 존중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채택하고 있고, 정치적으로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다양한 법률과 제도가 생산적 효율성 또는 배분적 효율성을 촉진하기 위해 설계되어 있고, 사회적 후생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잘 작동되도록 최선을 다하여 운용되고 있다. 재화는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의 역할을 하는 시장기구에 의하여 최고가치평가자에게 배분되고 최적의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거래를 규율하는 각종 민법, 상법 등은 거래의 안전, 사적자치의 원칙을 구현하도록 해석되고 운용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경쟁의 와중에서 부득불 발생할 수밖에 없는 낙오자들을 사회복지제도의 완비를 통하여 보호할 것임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자유민주주의가 인간다워지는 것은 사회안전망의 정비를 통하여 경쟁의 패자에게도 너그러워질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계약 하나를 해석하고 불이행에 대하여 엄격한 법적 강제를 부여하는 것은 사회안전망의 정비를 통하여 그 계약의 피해자일지도 모를 경쟁의 패자를 보호하기 때문에 정당화되는 것이다.

다시 무상급식으로 돌아가 보자. 그리고 다시 물어보자 무상급식은 이건희에게서  만원을 받아 거지 1명에게 나누어 줘 오늘 식사를 해결하게 하는 효과를 지향하는 것인가. 아니면 이건희에게서 100만원을 받아 내일이면 도박장으로 달려갈 거지 1인에게 나누어지는 제도를 꿈꾸며 설계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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