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한 대학살의 역사로 심리를 보다
잔혹한 대학살의 역사로 심리를 보다
  • 김지연 기자
  • 승인 2011.10.01
  • 호수 13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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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에 숨은 심리적 매커니즘의 위험성

▲ <관동대지진 때 일본인의 무차별적인 한국인 학살이 있었다>
일본 육군과 경찰은 관동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날조된 유언비어를 퍼뜨려 무고한 한국인 수천 명을 학살했다. 또한 경무서로 도망친 한국인들마저 쫓아 무참히 살해했다. 일본은 재앙의 분노를 한국인들에게 돌렸고 일본인들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살해하기 시작했다. 이는 한국인이라는 집단 자체를 대량으로 학살하는 제노사이드 사건이다.


잔인한 학살의 역사, 제노사이드

제노사이드라는 용어는 폴란드 출신의 유대인 법학자인 라파엘 렘킨(Raphael Lemkin)이 처음 사용했다. 이 말은 인종이나 종족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genos’와 살인을 의미하는 라틴어 ‘cide’를 결합해 만든 합성어다. 역사적으로 일어났던 엄청난 규모의 인종 학살을 보고 렘킨은 제노사이드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제노사이드란 넓은 범위의 정의로 한 집단의 존재 자체를 위험 속에 몰아넣는 행위나 모든 집단 학살 사건을 말한다. 더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절멸의 의도와 계획, 조직과 체계, 이데올로기, 희생자 집단의 민족·인종·종교 등의 성격, 전면적인 파괴의 결과 같은 여러 가지 구성 요소를 충족시키는 사건들을 제노사이드로 파악한다.

독일 나치정권은 민족·인종·종교적인 이유에서 유대인과 집시,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을 집단 학살했고 사회적약자인 동성애자들과 장애인들을 집단적으로 살해했다. 터키의 아르메니아인 학살은 20세기 최초의 집단학살로서 아르메니아인들은 오스만 제국의 통치 아래 공식적인 차별대우를 받고 150만 명에 달하는 희생자를 낳았다. 심지어 보스니아의 인종청소는 여성에 대한 강간도 의도적으로 이뤄졌다. 가정파괴를 통해 궁극적으로 공동체 자체를 완전히 파괴하겠다는 의도에서 이뤄진 행동이었다. 이 같은 사례들은 제노사이드 범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이하 제노사이드 협약)에 의해 모두 제노사이드로 규정하고 있다.


심리적으로 바라본 제노사이드

제노사이드가 발생할 때 가해자는 학살대상이 비인간화됨으로써 도덕적인 감각이 손상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한다. 곽정연<서울여대 인문과학연구소> 교수는 “가해자가 학살대상자들을 집단 살해하기 위해서는 살해하려는 대상자들을 열등한 인간이거나 인간이 아닌 물건처럼 만들어 버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나치가 유대인들을 벌레라고 칭한 것을 봐도 알 수 있듯이 학살대상을 같은 수준의 인간이 아니라 가해자 자신들보다 열등한 존재임을 반복적으로 투사시켜 최면을 걸고 자기 자신을 합리화함으로써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게 된다.

제노사이드가 발생하는 과정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가해자 집단은 묵인-동조-참여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세 가지 과정이 충족되면 제노사이드가 발생하게 된다. 곽 교수는 “무엇이 더 중요하다기 보다는 가해자 집단이 제도사이드에 가담할 때 각 과정에서 얼마나 수동적인지 적극적인지 정도의 차이일 뿐”이라고 말했다.

제노사이드의 사례에 따라 발생하는 심리적 요인들은 전반적인 심리적 매커니즘은 같지만 제노사이드가 발현되는 발생 배경은 다르다. 심리적 매커니즘은 가해자들이 자기 자신을 합리화하는 과정을 말한다. 제노사이드가 가장 발생하기 쉬운 정치적 여건은 독재체제다. 이는 집단 살해가 더 빨리 발생하는 조건이 된다. 곽 교수는 “독재정부가 가해자 집단에게 획일화된 생각을 주입시키기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할 만한 여지를 주지 않아 학살대상 집단을 좋지 않은 특징으로 대상화해 학살을 촉발시킨다”고 설명했다.

이는 문화적인 요인에도 부합하며 예를 들면 종교의 차이와 인종 차별적인 문화 형성으로 가해자 집단인 자신들과는 다른 대상으로 인식해 학살을 유발하게 된다. 하지만 제노사이드가 발생할 때 가장 큰 심리적 요인은 경제적인 요인이다. 곽 교수는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사람은 더 공격적으로 변하게 된다”며 “나치 때 전쟁에 패한 독일이 궁핍했을 시기에 대학살이 일어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제노사이드 가해자 집단의 심리를 곽 교수는 “자기 자신에 대한 불만이 다른 사람에게 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제노사이드의 피해자가 느꼈을 심리는 무엇이었을까. 가해자 집단이 자신을 박해하고 공격하기 때문에 공포감과 굴욕을 느끼며 인간으로서의 존중을 받지 못하기에 자신감을 잃고 자책하게 된다. 이는 두 가지 양상으로 발전될 수 있다. 하나는 이 같은 피해로 인한 또 다른 대상으로의 공격성이 표출되는 것과 다른 하나는 삶의 의미를 잃어 자살로 이어지는 것이다.

허버트 허씨<버지니아 주립대> 교수는 저서 「제노사이드와 기억의 정치」에서 “제노사이드는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성공적인 방법이 아니다"라며 “세계 공동체가 제노사이드와 정치적 학살을 종식시키기 위한 행동을 취하는데 머뭇거리는 것은 도덕적이지 못하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20세기 국민과 국가는 과거의 제노사이드를 묵과해 왔고 이에 대한 어떠한 움직임도 없었다. 만일 현대사회에 학살할 동기가 생긴다면, 법이 이 학살을 막을 수 있을까. 제노사이드가 사회에서 발현해 엄청난 참극을 가져오기 전에 제노사이드를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참고: 저서 「제노사이드 : 학살과 은폐의 역사」,「제노사이드와 기억의 정치」, 논문 「정신분석학과 문화분석」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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