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의 슬픔을 주시하는 인류학자의 눈과 예술가의 눈
열대의 슬픔을 주시하는 인류학자의 눈과 예술가의 눈
  • 김명지 기자
  • 승인 2011.09.25
  • 호수 13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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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열대」와 「슬픈 열대」
▲ <국립 스코틀랜드 미술관에서 소장 중인 폴 고갱의 「열대 식물」, 1887년>
저서 「슬픈 열대」는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의 저작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동명의 책이 또 있다. 우리나라에서 「폴 고갱, 슬픈 열대」(이하 「슬픈 열대」)로 알려진 책이 바로 그것이다. 사실 이 「슬픈 열대」는 그가 자신의 삶에 대해 쓴 여러 글과 그림을 엮은 책에 편집부가 임의로 제목을 붙인 것이다. 그러나 여기엔 나름의 타당한 이유가 있다.

고갱이 향했던 열대지역은 남태평양 폴리네시아의 타히티섬이었다. 사실 고갱에게 열대의 세계는 익숙한 것이었다. 어머니, 누나와 함께 7세까지 페루의 리마에서 산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어머니는 페루 출신 혼혈이었는데 고갱은 이를 무척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또 고갱은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6년 동안 남미와 북극 등을 누비고 다니며 새로운 문화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를 보인다. 뿐만 아니라 그는 파나마운하 건설 작업에 노동자로서 참여하기도 했고 중미 카리브해 부근에 있는 마르티니크 섬으로 가 찬란한 색채와 관능, 자연의 아름다움을 경험하기도 한다. 이는 그에게 많은 예술적 영감을 불어넣어주었고 그의 작품 「마르티니크의 망고나무 숲」, 「열대 식물」 등으로 이어진다.

프랑스로 돌아온 그는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자바섬의 예술을 관람하고 다시 한 번 열대를 꿈꾼다. 어느 일요일 드루오 호텔에서는 다음날 열릴 고갱 그림의 경매를 위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 전시회 역시 타히티로 가는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타히티로 떠난다는 소식에 대해 묻는 기자에게 그는 이와 같이 답한다. “평안을 찾아 떠나는 겁니다. 문명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죠. 제가 원하는 건 다만 단순한, 지극히 단순한 예술입니다. 세상의 의무에서 벗어나 때 묻지 않은 자연의 원시상태로 돌아가서, 어린아이처럼 오직 원초적인 예술의 기법과 선과 진실만을 머릿속에 담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가 당도한 타히티는 그가 꿈꾸던 모습이 아니었다. 프랑스는 아름다운 섬의 원시문명들을 파괴하고는 그들에게 식민지란 이름을 씌웠다. 그는 이 섬을 ‘경박하고 유치하고 우스꽝스러운 유럽 모방이 날이 갈수록 더해지는 곳’이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눈에 신기한 모습이 보인다. 그가 머물던 마을 파페에테에서 국왕의 장례식장을 예술적으로 꾸미는 왕비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녀가 꾸미는 왕궁은 마오리족 특유의 미적 감각이 담겨있었다. 그는 그제서야 기계적으로 강제 이식된 유럽문화와 피정복 민족의 전통적 아름다움을 구분하게 된다. 그러나 이 역시 오래가지는 못한다. 어쨌거나 그곳은 이미 식민지로 전락해 수모를 겪고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현지 여자를 만나 정열적인 사랑을 나누는 등 레비 스트로스 못지않게 적극적으로 현지와 소통했던 고갱이지만 결국 금전이 동나고 자신을 후원하던 테오 반 고흐도 세상을 떠나자 환멸을 느끼고는 다시 파리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그의 인생의 종착지는 결국 타히티였다. 여러 고초를 겪은 그는 타히티의 어느 오두막에 칩거하며 집필에 열중한다. 「웃음」이란 잡지를 스스로 발행하며 타히티 식민지정책에 야유를 보내는 등 식민지 원주민들의 인권에도 관심을 갖는다. 그러던 중 1933년 부패한 헌병대의 비리를 고발했다가 오히려 벌금 1000프랑과 징역 3개월을 선고받은 그는 항소를 하기도 전에 심장마비로 추정되는 죽음을 맞이한다. 그의 오두막에서였다.

열대를 바라보는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와 예술가 폴 고갱의 시선은 달랐다. 그러나 그들이 바라보는 것은 하나였고 열대가 슬펐던 이유 역시 같았다. 이들은 이기적인 문명의 시선을 서구인의 눈으로 절감했기 때문이다.

참고: 저서 「폴 고갱, 슬픈 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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