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지식인, ‘미완성’ 광복에 분노하다
젊은 지식인, ‘미완성’ 광복에 분노하다
  • 이나영 기자
  • 승인 2011.09.25
  • 호수 13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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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9월 22일, 반민특위 폐지법안 가결

 

▲ <반민특위 조사부 책임자 회의를 마치고 촬영한 기념사진>
오늘 아침, UN 총회로 떠들썩한 신문 한 켠에 단신으로 보도된 반민특위 폐지 소식을 접했다. 자세히 보지 않았더라면 모르고 지나쳤을 일이다. 이런 중대한 사안이 단신으로 보도된다는 것이 뭔가 의심쩍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지 1년이 조금 넘었다. 내가 대학에 들어온 지도 1년이 조금 더 지났다. 새로운 국가의 운영을 위한 정계의 움직임이 활발한 가운데 1948년 국회의원 선거 결과 무소속 소장파 의원들이 국회 의석수의 절반가량을 차지했다. 그들은 과거 일본제국주의에 가담했던 인사들을 처벌함으로써 민족정기를 세워야 한다며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구성하고자 했다. 이때까진 이를 지지하던 정부였다.

반민특위의 초기 활동은 활발히 이뤄졌다. 친일 행적으로 체포된 인원이 600명을 넘었다. 정치, 종교, 언론, 문학 등의 각종 분야에서 친일세력들의 행적이 드러났다. 명성을 가진 인사들이 그렇게도 쉽게 자존심을 팔다니,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국민들 역시 많은 관심을 쏟으며 그들을 처벌하는 데 찬성했다. 거리엔 반민족행위 투서함도 생기곤 했다. 온 나라에 친일 행위를 경멸하는 풍조가 만연했다. 그러나 정부 요직에 있던 인사들 중 친일파가 많이 있었던 것이 이미 반민특위에 불행을 예고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정부 수립 후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국회에서 친일파를 엄단하라 주장하는 자들은 빨갱이다”라는 내용의 삐라가 살포됐다. 나는 이것이 정부의 사주에 의한 것이 아닐까 의심한다. 주동자들은 이내 붙잡혔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경찰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을 불구속 석방했다. 친일 전적을 가진 자들이 경찰 요직을 차지하고 있던 차였다. 분명 의도적인 일이 아닌가.

몇 달 전, 친구가 침울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와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친구의 아버지께선 반민특위의 일원이셨는데 아버지의 사무실이 사복경찰에 수색 당했다는 것이었다. 당시 친구는 아버지가 혹여 반정부적인 활동으로 살해당하지 않을까 걱정했단다. 경찰 고위층 몇 명이 반민특위 관련자들을 살해하려 한다는 음모가 떠돌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국 자신과 가족이 위협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친구는 자신의 아버지를 공산주의자로 의심하게 됐다.

얼마 전 반민특위에 적극적이던 김약수, 노일원, 박윤원, 서용길 등 소장파 국회의원들이 프락치라는 누명을 쓰고 체포됐다. 충격과 동시에 한편으론 미심쩍은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과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며 이런 생각을 말씀드려 봤지만 오히려 부모님은 나에게 “집안에 빨갱이가 났다”며 화를 내셨다. 그 뒤 반민특위 폐지법안이 통과된 지금에 이른 것이다.

현 사회에 의심을 품고 있는 시선이 얼마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한다 하더라도 이를 마음껏 표현할 순 없을 것이다. 나는 정치적으로 특정한 색채를 가지진 않았지만 내가 꿈꾸던 사회는 이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세력을 키우기 위해 신념 앞에 눈 감고, 부정을 택할 수도 있는 것이 현실이란 말인가.

자유로이 의견을 표출하는 순간 공산주의니 반정부적이니 하며 압박을 하는 것이 요즘의 사조인 듯하다. 해방이 돼 정부가 수립되기까지 했지만 국민들은 여전히 억압 속에서 살고 있다. 그렇지만 지금보다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도움: 김지형<동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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