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꽃보다 아릅답다고 하던데
사람이 꽃보다 아릅답다고 하던데
  • 이형중<의대 의학과> 교수
  • 승인 2011.09.20
  • 호수 13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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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란 ‘글’, ‘도구’와 더불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구성원들의 상호 피드백에 필수적인, 문화전파의 전위대 역할을 하는, 담배연기처럼 파지할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러나 때로는 서로를 인지하고 교통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이해시키는 촉매제로서의 언어의 역할은 비언어적인 것보다 못할 경우도 있다고 하니, ‘말’이란 것은 내용적인 측면 못지않게 표현이나 전달방법 등의 형식적인 면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논리적으로 결론이 도출되며 오해의 소지가 별로 없는 자연과학적인 단답형 대답이 아닌, 시작과 끝이 없고 본질적으로 사회과학적이며 화자의 서술형이자 주관식 견해를 표명할 때에는 “…것 같아요”란 접미사가 슬그머니 붙어버렸다. 애매한 상황을 모나지 않게 에두를 수 있는 처세술의 일면을 보는 듯하다.

결국 내가 말하려하는 내용은 내 것이 아닌 타인의 의견일수도 있다는 모호함을 드러냄으로써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 한 여름 얼마나 뜨거운지 묻는 방송기자에게 “아주 더운 것 같아요”라니.

모선수가 인터뷰 때마다 즐겨 사용하던 “…때문에”란 말은 피아가 확실하게 구분되는 과학적인 영어의 영향력에 힘입어 “그럼에도 불구하고”와 함께 너나 할 것 없이 애용하는 국민적인 표현이 되었다. 제대로 된 문장을 끝까지 들으려면 인과관계나 개연성을 설명하려는 인터뷰이의 입을 초조하게 주시해야만 한다.

표현에서의 답답함은 최근 젊은 친구들이 말을 하는 방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겉은 성인인데 본인의 의도를 정확하고 간결하게 전달을 못하여 말과 문장이 종결되지 못한 채 접속사만 되풀이하면서 계속 늘어진다. 여자의 경우는 좀 더 심각하여 콧소리까지 섞이면서 말 중간에 “아 정말요?” 하면서 평생 속고만 살았는지 줄곧 검증을 받으려고 한다.

공중파의 위력은 행인들을 인터뷰하는 모습에서도 우습게 나타난다. 분명히 일반인인데도 운동선수처럼 인터뷰 말미에 “좋은 모습 보여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한다. 뭘 보여주고 왜 자신의 일인데 굳이 남에게 평가받으려 하는지.

무엇보다 기가 막힌 것은 물건을 의인화시키고 자신을 낮춰버리는 이상한 존대말의 남용이다.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고 계산대에 가면 알바생 점원이 “5천원이세요”라고 한다. 지폐가 소중하기는 하겠지만 사람보다 중요할까마는 사람이 아닌 종이쪽지에게 높임말을 사용한다. 알바생의 시급보다도 계산대에 찍힌 금액이 더 높아 자의반 타의반으로 돈에게 존대말을 붙인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자학하면 속이 후련해질까.

아무리 값 나가는 물건이라도 사람보다 더 값나가고 사람 이상의 대접을 받아야 할까. 어느 가수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하는데, 꽃값이 알바생의 시급보다 높다고 꽃이 사람이상으로 대접받을 수는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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