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된 자기와 가장 자기다운 자기’
‘어쩌다 된 자기와 가장 자기다운 자기’
  • 유제흥<취업지원센터> 교육전담교수
  • 승인 2011.09.05
  • 호수 13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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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스토리가 스펙을 이긴다」는 책이 취업시장의 화두가 된 적이 있었다. ‘스토리’와 ‘스펙’을 대립구도에 놓은 취지가 훌륭하긴 하지만 현실의 정확한 반영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이는 내용과 형식, 과정과 결과의 다른 표현일 수 있다. 때문에 의도와는 달리 ‘스토리 만들기’라는 또 다른 스펙만들기를 요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겐 심리학에서 언급하는 자아정체성 형성 유형이 학생들의 미래설계와 사회진출 준비과정을 진단하고 조언하는 좋은 도구가 된다. 자아유실형, 자아유예형, 자아혼미형, 자아완성형이란 4가지 틀이 바로 그것인데 여기에 '고민과 실천'이라는 범주를 곁들이면 더욱 유용하다.  

‘자아유실형’은 남의 정체감을 빌려 쓰면서 자신의 정체감 형성 가능성을 폐쇄하고 있는 유형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스펙에 매달리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넘쳐나는 ‘합격자소서’와 면접후기, 대단한 비법인양 포장된 취업특강 등 취업정보의 오남용은 자아유실형의 서식처가 된다. 여기에 각박한 취업현실은 학생들을 이 유형에 더욱 가깝게 만든다. 최근 고졸사원 채용확대로 왜곡된 고학력 선호현상을 바꾸겠다는 움직임이 분주하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요즘 분위기라면 자칫 대졸 백수는 눈만 높은  인간으로 보는 주위의 눈총에 더욱 압박받아야 할지 모른다는 점이다. 이런 압박이 학생들을 불필요한 경쟁과 ‘자아유실’의 길로 내몰 것은 당연하다.

‘자아유예형’은 뚜렷한 정체감을 찾지는 못했지만 노력하고 있는 형이다. 멋지게 표현하면 자기를 찾기 위한 내적인 투쟁을 벌이고 있는 과정이다. 문제는 내적 투쟁만 한다는 점이다. 설령 실행에 옮겨도 이내  작심삼일에 그친다. “다음 학기부터, 4학년 때부터는” 식이다. 대단위 강의를 맡고 있는 필자는 학생들의 의식과 동향을 알 수 있는 기회를 갖는데, 학점을 포기하고 학업을 연장하려는 학생들, 늘어나는 휴학기간 이들 모두가 ‘자아유예’의 결과인 경우가 많다.

‘자아혼미형’은 삶의 목표도, 사회진출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실천도 모두 다 부재한 경우다. ‘시체놀이’처럼 살아있으되 살아있지 않은  도피와 목표 없이 기웃거리며 바쁘게 살고 있다고 착각에 빠져있는 ‘속임수의 영역’에 대학생활을 내맡기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이들 세 가지 유형을 극복하면 자아완성에 이를 수 있다. 성공적인 대학생활과 경력관리의 길은 '자아유예'와 ‘자아유실’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거듭된 실패와 탈락의 시련에도 ‘자아상실’ 상태에 빠지지 않아야 하고, 청년실업난을 구실삼은 구인 측과 기성세대의 우쭐거림과 불합리에 당당해야한다. ‘어쩌다 된 자기’가 아닌 ‘가장 자기다운 자기’를 향한 멋진 새 학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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