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기초란 무엇인가
우리에게 기초란 무엇인가
  • 서동호<산학협력실 연구지원팀> 과장
  • 승인 2011.08.31
  • 호수 13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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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동호<산학협력실 연구지원팀> 과장
필자의 어린 시절엔 요즘 어린이들과는 달리 태권도를 배우는 친구들이 많이 없었다. 태권도의 도장 분위기도 일본 공수도 도장처럼 무덕관이니 창무관이니 하면서 여러 가지 관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도복 또한 지금의 태권도복 형태가 아닌 공수도복 혹은 유도복이 전부였다. 허리에 검정 띠를 두르고 공중을 가르며 멋지게 이단 발차기를 하고 품세를 하는 모습은 당시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이런 모습을 동경한 필자는 학교에서 방과 후 학습으로 운영하는 태권도 수업을 신청했고 머지않아 날며 이단옆차기 할 모습을 그려가며 부푼 꿈을 안고 수업에 참석했다. 그런데 매일 실시하는 연습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달랐다. 수업시간에 사범님은 우리에게 품세를 가르치기는커녕 매일 정권지르기, 발차기 연습만 시켰다. 그리고 시간이 나면 굵은 모래로 가득한 운동장에서 주먹 쥐고 푸시업만 수십 차례 하곤 했다. 설상가상으로 주먹의 상태가 좋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검도를 할 때 사용하는 죽도로 엉덩이를 죽도록 맞곤 했다.

 필자는 멋지게 폼을 내며 고난이도의 품세를 보여주고 싶었던 부푼 꿈을 접고 두 달 만에 태권도를 그만뒀다. 그리고 한동안 매일 고생만 시켰던 사범님을 원망하기만 했다.

이러한 원망이 바뀌어 사범님의 큰 뜻을 이해하게 된 것은 중학교 시절부터 극장을 찾아가 가끔 봤던 쿵푸영화에서였다. 영화 속의 내용은 대부분 천편일률적인 것이어서 무술을 못하는 주인공이 무술을 배워 복수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무술을 배우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주인공들은 무술을 배우기는커녕 필자가 어린 시절에 당했던 고통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체력 훈련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제자에게 스승은 늘 기본이 되어 있어야 무술을 배울 수 있다는 말을 한다. 결국 스승의 뜻을 이해한 제자는 기초 체력을 갖추게 되고 이후 남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실력을 갖게 되는 것이었다.

우리는 기초가 탄탄한 사람을 일컬어 내공이 가득 차 있다고 말한다. 이 또한 무술에서 사용하고 있는 말이다. 내공이 가득한 사람이 보여주는 품세는 그 동작이 단순하다 해도 멋지다는 표현을 넘어서 아름답기 그지없다. 검정 띠 이상만 할 수 있다는 ‘고려’, ‘금강’이 아닌 흰 띠가 처음 배우는 ‘태극 1장’을 해도 동작이 기품이 있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품세로 가기 위한 기본 동작과 그것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기초적인 내공을 쌓는 것이다.

작금 우리 주변의 많은 조직들은 변신을 위해서 다양한 조직체를 만들어내려고 무척이나 애를 쓰고 있다. 얼마나 효율적이고 멋진 품세와도 같은 동작을 만들어내려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최대의 능률을 끌어올리고 최선의 효과를 보기 위한 조직을 만들기 위해 가끔은 가장 비인간적인 조직형태를 만들어 낼 때도 있다. 사람이 살기 위하여 만들어진 조직이 때로는 이른바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기 위한 도구로 사용될 때가 있다는 것이다.

가끔 필자는 이런 생각을 해본다. 신입시절부터 차곡차곡 내공을 쌓게 해 그 분야의 달인을 만들고 시간이 흘러 그 사람이 조직의 상급자가 됐을을 때엔 노마지지(老馬之智)의 내공이 가슴 속 깊게 쌓여 그를 본받으려는 후배들이 가득한 조직. 아마도 그런 조직에서는 든든한 선배들의 경험과 내공을 믿고 후배들은 나름 새로운 발전을 위한 다양한 도전을 시작할 것이다. 그리하여 신구세대가 조화롭게 서로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조직. 지금 우리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화려한 품세 같은 조직이 아니라 단 한 번의 발길질에도 힘이 실려 있는 기초가 튼실한 조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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