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7%보다 강력한 54만 명
25.7%보다 강력한 54만 명
  • 김규범<언정대 정보사회학전공 08>
  • 승인 2011.08.31
  • 호수 13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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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끝났습니다.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였지만 의미 부여는 이해관계에 따라 제각기 다릅니다. 다들 정치적 논리만 따지고 있습니다. 복지란 담론이 없다는 점은 안타깝지만 애초에 ‘복지’가 아닌 ‘정치’ 투표였다는 점에 비춰보면 당연한 수순입니다.

이번 선거는 시작부터 서울시장 오세훈이 아닌 정치인 오세훈의 정치 쇼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정치적 생명을 건 도박이었다고 합니다. 만약 이 말이 맞다면 정치인 오세훈은 그의 참모진들을 당장 바꿔야 할 것입니다. 이미 여러 사전 조사를 통해 어느정도 실패한다는 예측이 가능한 투표였습니다. 특히 지난 폭우 이후 급격히 나빠진 여론을 감안하면 지금은 때가 아님을 알았을 겁니다. 그렇다면 정말 정치인 오세훈이 자신의 정치 생명을 걸고 도박을 한 것일까요. 아니라고 봅니다. 그 어떤 정치인이라도 패배가 예견된 도박을 하진 않습니다. 정치인 오세훈이 애초에 의도한 건 자신의 지지층 확보였고, 기반 다지기였습니다. 차기 대선후보라는 이름만 있을 뿐 실체를 확인할 수 없었던 자신의 지지층을 확인하고 당 내 기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로 만들려 했습니다. 그 결과 강남 3구는 여전히 확실한 지지기반으로 남았다는 점을 재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주민투표의 성사 여부는 그로선 안중에도 없던 문제였습니다. 이미 그는 서울시장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의회에 묶이고 강남 시장이란 비아냥거림까지 받으며 시장직을 4년이나 할 순 없었을 테니까요. 차라리 확실히 정리하고 지지기반을 쌓은 뒤 물러나겠다는 구상이었을 것입니다.

이번 투표 비용은 182억입니다. 무려 182억을 들여서 정치인 한 명의 쇼를 한 셈입니다. 아니 이젠 182억짜리 서울시장 퇴임식이라 해도 무방합니다. 그 속에서 주민투표 본연의 의미, 복지라는 담론은 실종되고 말았습니다. 이미 여야는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를 찾고 있다고 합니다.

비록 이번 투표가 정치인의 쇼로 시작됐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도시에서 주민투표가 발의됐다는 점은 의미가 큽니다. 무려 54만 명의 시민이 서명을 해 성사된 주민투표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참여민주주의가 점차 정착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젠 마음에 들지 않는 정책이 있다면 국민 중 누구나 나서서 심판할 수 있습니다. 이번 투표에선 조금 왜곡되긴 했지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달아가는 중입니다.

여야 정치권에서는 정치적 주판만 튕기지 말고 이 54만 명이라는 숫자에 대해 곱씹어봐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다시는 이 같은 정치적 쇼에 주민투표가 악용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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